스위스/이탈리아_01. 스위스
한국 나이로 마흔이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지 모를 타격을 받고는 한다.
인생의 젊음은 뒤로하고 중년의 막을 올리는 느낌이라는데
나 같은 경우는 이제 한국 나이가 의미가 없어져서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마흔을 맞이했다.
만 나이로는 아직도 서른여덟이기도 하고.
아직은 현실감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어려서부터 마흔 이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대기만성형이라는 타고난 사주팔자 때문일까? 만나본 많은 어른들이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고 말하곤 하는 40대.
40대의 인생이 마냥 기다려지고 기대가 된다.
그 시작점에 선 지금 그 스타트를 어떻게 끊느냐의 기로이다.
좋은 느낌으로 시작하고 싶은 이 시점.
햇수로 18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안식휴가를 맞이하기도 여러 번이다.
IT 업계에서 일을 한 덕분에 이러한 호사를 누리게 된다.
이번 휴가도 안식휴가에 개인 휴가를 더하여 총 22일의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22일 휴가를 알뜰하게 모두 유럽 여행에 투자할 생각뿐이었고, 그렇게 여행을 다녀왔다.
마냥 들뜨고 즐겁고 설레는 인연이 가득한 여행이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품고.
하지만 유럽 여행은 즐겁지만은 않은, 나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나라는 사람을 분석하게 된 다사다난 한 여행이었다.
돌아오고 나니 마냥 좋았던 기억만 남는 것이 아쉬워 당시의 내 감정과 겪었던 일들을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기록하여 남기고 싶었다.
나는 내 기억을 가장 믿지 못하므로,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기록을 남기고 싶다.
이렇게 기록하면 그때 그 순간이 어제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유럽여행의 첫 도착지는 스위스 취리히였다.
뒤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나는 전형적인 P 성향의 사람이므로 날씨며 관광루트며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무작정 스위스 in / 이탈리아 out을 택했다.
이탈리아에서 쇼핑을 많이 할 것 같은데 그 짐을 들고 스위스를 가면 힘들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였지만 이 선택이 옳았다.
짐도 짐이고 스위스에서 tax refund 받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사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다. 그냥 스위스에서는 특별히 쇼핑할 일은 없을 것 같아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다.)
수년 전에 파리 여행을 계획하며 산 유럽 책자를 훑어보며 스위스의 일정은 취리히/루체른/그린델발트/체르마트로 결정하였다.
이 루트는 사실 체크인유럽이라는 카페에서 내 일정(8일 체류)에 맞춰 추천해 준 일정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경로였다.
취리히는 장거리 비행의 여독을 풀 겸, 공항에서 가까운 숙소 중 저렴한 곳을 골라 1박 2일로 묵게 되었다.
앞으로 계속 써 내려갈 이야기지만 나의 이 저주받을 P 성향을 여행 내내 지독하게 욕을 했다.
여행 루트를 정하지 않고 숙박 예약 플랫폼에서 상위에 rank 된, 가격이 적당한, 평점이 높은 숙소를 골라 무조건 예약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나의 여행 동선과는 매우 접근성이 떨어지는 숙소 위주로 고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안 그래도 다양한 도시를 거쳐야 하는 이번 여행을 더욱더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와서, 취리히의 첫 숙소는 차로는 취리히 공항에서 단 10분 거리의 air b&b 숙소였다.
하지만 웬걸, 막상 공항에서 내려서 대중교통 경로를 찾아보니 버스와 버스로 갈아타가며 40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택시를 잡는 방법을 따로 검색해 본 것이 아니므로 그냥 버스 티켓 사는 장소를 물어가며 1 way 버스티켓을 구매해 숙소로 향했다.
(처음 여행 안내소 같은 곳을 찾아 그곳의 직원 할아버지에게 버스 티켓을 어디서 사냐고 물으니 어이없다는 듯이 허공을 보더니 나를 보고 버스티켓? 이라며 어이없어했다. 왜 그러셨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네 버스 티켓이요'라고 하니 방향을 알려주는데 뭐라 뭐라 더 말하는걸 땡큐하고 나와버렸다. 난 그저 처음 만난 스위스 사람의 인상이 안 좋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니는 내내 심지어 서비스 직원들까지 다들 화가 나있거나 무척이나 무뚝뚝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유한 나라이다 보니 사람들이 마냥 여유롭고 친절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과는 달리 그들은 매우 근면성실하고 바빠 보였으며 무뚝뚝하고 가끔은 화가 나 보였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길을 묻거나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친절하게 도움을 준다. 오히려 마트 캐셔들이나 경찰들, 숙소 호스트 같은 사람들이 무뚝뚝하거나 화가 나있는 신기한 나라였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를 7일권(구매 당시 633,600원, 나의 스위스 체류 일정은 8일)을 구매했기 때문에 첫날은 어차피 숙소로만 이동하면 돼서 일회권 버스티켓으로 숙소 이동을 택했다.
숙소의 air b&b 사진
다행히도 숙소의 호스트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게스트 하우스의 개인실을 쓰는 느낌의 숙소였는데, 나중에 알게 되지만 스위스 숙소 중 주방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숙소였다. (나란 사람은 숙소 시설 정보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예약하는 인간이다)
아마 이날 첫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며 잤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스위스의 주택가는 음식점 같은 상점이 주변에 전무하다시피했다.)
아직 마트 문이 열려있는 시간이었지만 걷기엔 거리가 멀었고 40분을 걸어서 도착한다 한들 그 시간즈음이면 마트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숙소에서 수건도 주지 않아서(요청했으면 받았겠지만 답변이 빠르지가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세수만 하고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한국에서 챙겨간 햇반과 레토르트 김치찌개, 김으로 식사를 했는데 외국에서 먹으니 왜 그리 맛있던지 배 부르게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마찬가지로 세수만 하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취리히 시내로 나갔다.
(이 숙소에서 첫 번째 현타가 왔던 것 같기도 하고...
멀쩡한 내 집 놔두고 왜 내가 여기 와서 전기 포트에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가며 타월이 없어서 샤워도 못하고 공용화장실을 써가며 시내나 마트 한번 나가려면 40분씩 버스를 타야 하는 생활을 돈 내고 해야 하는가....)
체크아웃이 오후 2시였고 스위스 트래블 패스로 자유롭게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숙소에 짐을 두고 시내투어를 하다가 다시 숙소에서 짐을 챙겨서 루체른으로 떠날까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숙소까지 되돌아가는 시간이 꽤 낭비가 되므로 그냥 나가는 길에 체크아웃을 하고 취리히 역의 코인 라커에 짐을 맡기고 취리히 시내를 돌아다녔다.
코인 라커는 L사이즈를 사용하면 24인치 캐리어를 충분히 넣었던 것 같다. (라커 사용비 13,500원)
역에서 나오면 리마트강이 있고 그 양옆으로 저렇게 건물들이 나열되어 있다.
성당들과 옛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중세시대 느낌이 나고,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튀지 않게 조화를 이루면서 고즈넉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였다.
걷기만 해도 좋은 도시.
린덴호프에서 취리히 시내 전망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하여 설렁설렁 올라가 봤다.
얼마 오르지 않아 도착한 린덴호프의 전망은 그로스 뮌스터를 포함해 전체적인 명소를 조망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촬영했다고 하는데 드라마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취리히에서는 꼭 들러야 할 만큼 전망이 아름다웠다.
이곳 벤치에 앉아서 꽤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한국인, 중국인, 또 중국인 그룹 투어가 들렀다 가는 동안 계속 벤치에 앉아서 뷰멍의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봤다 싶어 발걸음을 돌리려니 다시 올 일이 없을 장소인 것 같아 두 번, 세 번 발길을 돌려 다시 전망을 보며 앉아있게 한 장소였다.
린덴 호프에서 내려오는 길에 미리 검색해 둔 빅토리아 녹스 팝업 스토어가 있어서 방문했다.
원래 루체른의 빅토리아녹스 구글 평점이 높아서 루체른에서 쇼핑을 할 예정이었는데, 가는 길이므로 들러보았다가 이곳에서 맥가이버 칼을 구매했다.
이번 유럽 여행 내내 거의 매일 밤 맥주나 와인을 마셨는데 이때 산 맥가이버 칼을 매번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애초에 술 따는 용도가 집결된 맥가이버 칼을 구매했으니 그 목적을 톡톡히 달성한 셈이다.
5프랑을 내고 이름 각인을 할 수 있었고, 한국돈으로 총 45,000원으로 구매를 했다.
뭐... 기념품이라고 산 거지 저 돈으로 굳이 살 아이템인가 효율성을 따져보면 그 의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여행 내내 활용을 잘했기 때문에, 그리고 구매하고 싶어 벼르던 빅토리아녹스의 맥가이버 칼이므로 구매에 후회는 없다.
예의상 프라우 뮌스터, 그로스 뮌스터 가까이 한 번씩 가 보고....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패스했다.
성당은 이탈리아 가서 보는 것으로 나와 합의를 봤다.
사실 린덴호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취리히 호숫가에 앉아서 거리의 악사의 음악을 들으며 백조를 구경한 순간이었다.
백조의 호수라는 말이 스위스의 호수를 보며 만들어진 말인가 싶을 정도로 취리히 호수에서는 백조를 분당 율동공원의 오리만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백조를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라 마냥 신기해하며 백조 구경, 또 너무나도 거대한-끝이 없는 취리히 호를 보며 호수 구경, 그리고 나와 같이 이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 구경을 하며 하염없이 취리히 호숫가에 앉아있었다.
스위스 여행의 최대 장점은 대중교통 표를 미리 예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아무 때나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표 검사 시 휴대전화에 저장 한 스위스 트래블 패스만 보여주면 된다) 모든 장소에서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 섞여있으나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은 상태의 고립감을 풍경과 함께 고스란히 즐기며 평화로움을 만끽했다.
이제 슬슬 루체른으로 떠나볼까 하던 시점에, 점심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리히를 검색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이 홀리 카우를 먹고 너무 맛있었다는 평가들이 많아서 홀리카우를 들를까 말까 무척이나 고민을 했다.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 먹어서인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고 그중에서도 딱히 햄버거가 당기지는 않았던 터라 취리히 중앙역으로 이동하면서 걷는 내내 고민을 했는데-
결론이야 뭐,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경험을 해보겠냐며 결국 들른 홀리카우.
맛은... 정말 그냥 평범했다.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물가가 비싼데 반해 음식맛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은 스위스에서의 외식에 지친 사람들에게, 홀리카우 정도면 훌륭한 대안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같이 막 스위스 여행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라면 꼭 들러서 맛봐야 하는 선택지는 아니므로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참고했으면 한다.
하지만 손님이 많아서 줄 서서 주문을 했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직원들이 서빙을 해준다.
워낙에 손님이 많아서 나중에는 다른 손님들과 합석을 해야 했으니 현지에서도 인기가 많은 장소임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