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심돈 앞 잔디밭 / 새벽 3시 15분
"저기다! 저놈들을 밀어버려!"
빗줄기를 뚫고 무전기 너머로 박진철의 살기 어린 고함이 터져 나왔다.
멀리서 대기하던 검은색 대형 SUV 5대가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맹수들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육중한 엔진 배기음이 새벽 공기를 찢었다.
놈들은 망설임 없이 잔디밭 위로 돌진해오며 하이빔을 켰다.
이준과 수영의 시야가 순식간에 하얗게 멀어버렸다.
"선배! 놈들이 차에서 내린다! 손에 엽총이야!"
수영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선두 차량의 창문이 내려가고, 비에 젖은 총신의 번뜩임이 보였다.
물리적 거리는 100미터.
놈들이 들이닥치기까지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이었다.
"겁먹지 마. 소리는 총알보다 빨라."
이준은 흔들리는 눈빛을 거두고, 거대한 초지향성 파라메트릭 스피커의 조준경을 들여다봤다.
타겟은 아까 붉은 락카로 표시한 X자 지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붉은 표식만이 선명했다.
"주파수 설정, 황종(黃鐘, Eb - 256.4Hz). 출력 최대. 발사!"
이준의 외침과 동시에 수영이 엔터키를 힘껏 내려쳤다.
우우웅-
처음엔 미약한 진동이었다. 하지만 초음파를 변조하여 직진성을 극대화한 256.4Hz의 정밀한 저주파 빔이 15도 각도로 나선형 벽을 정확히 타격하는 순간, 물리학의 마법이 일어났다.
그것은 영국 성 바오로 대성당의 돔에서나 볼 수 있다는 '속삭이는 회랑' 효과였다.
음파는 벽에 부딪혀 흩어지는 대신, 매끄러운 나선형 곡면을 타고 뱀처럼 휘감기며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의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고 한 지점으로 응축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었다.
쿠우우우-! 콰아아앙!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기를 찢고 공간을 뒤틀어버리는 압력이었다.
동북공심돈 전체가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되어 웅장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공진 현상이 1975년의 가짜 벽 뒤에 숨은, 1796년의 진공 공간을 사정없이 타격했다.
달려오던 박진철의 용역 깡패들이 갑자기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머리,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인간의 전정기관을 교란하는 강력한 초저역대 공명음은 그들의 뇌를 직접 타격했다. 덩치 큰 사내들이 마치 배 멀미를 하듯 휘청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구토를 했다. 차에서 내리던 박진철마저 중심을 잃고 흙탕물에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죽은 벽' 안쪽에서 묵직하고 둔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벽 내부에 230년간 잠들어 있던, 오직 특정 주파수의 진동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된 정약용의 무게추 시스템이 잠금을 해제한 것이다.
드르륵, 콰직- 쿵!
1975년 박진철의 아버지가 덮어버린 시멘트 위장막이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딘 육중한 화강암 슬라이드 문이 옆으로 스르르 밀려났다.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 그러나 그것은 썩은 내가 아니라 박제된 역사의 신성한 향기였다.
"수영아, 넌 여기서 라이브 방송 켜! 전 세계에 송출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내려오지 마!"
이준은 망설임 없이 열린 틈, 칠흑 같은 지하의 아가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지하는 서늘했다. 빗물 섞인 습기와 오래된 종이 썩는 냄새가 폐부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이준은 준비해 온 '습식 다이아몬드 코어 드릴'을 꺼내 벽에 고정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망설였다.
역사학도로서 문화재를 손상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면 역사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차라리 범죄를 저지르지.
그건 절대 용납 못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어.'
전면에 보이는 것은 <대통령 경호실> 마크가 붉게 찍힌, 50c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 벽이었다.
위이이잉- 콰아아앙!
드릴이 굉음을 내며 콘크리트를 갈아내기 시작했다.
50년 전 군사 독재 정권이 숨기려 했던 진실의 두께는 두껍고 단단했다.
마찰열로 인해 드릴 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이준의 팔근육이 터질 듯 경련했다.
흙먼지와 콘크리트 가루가 눈을 찔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때, 등 뒤에서 철벅, 철벅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드릴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불길한 장전 소리.
철컥.
등 뒤로 소름이 끼쳤다.
이준이 고개를 돌리자, 방독면을 쓴 박진철이 엽총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공명음의 고통을 정신력으로 버티며, 악귀처럼 끝까지 따라온 것이다.
"끈질긴 쥐새끼가... 감히 내 정원을 망치려 들어?"
박진철의 목소리는 방독면을 통해 기계음처럼 기괴하게 왜곡되어 울렸다.
타앙!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총알이 이준의 어깨를 스쳤다.
살점이 튀고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으윽!"
이준은 비명을 삼키며 본능적으로 드릴 뒤로 몸을 숨겼다. 고통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드릴의 레버를 놓지 않았다.
"당신 아버지는 역사가 두려워서 덮었지만, 당신은 사리사욕 때문에 태우려 해! 그게 당신이 아버지보다 더한 괴물이라는 증거야!"
이준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박진철이 비릿하게 웃으며 다시 총을 장전했다.
"닥쳐! 네놈이 정치를 알아? 백성은 개돼지야! 자유를 주면 방종하고 권리를 주면 떼만 써! 역사는 엘리트가 가꾸는 정원이야! 잡초는 뽑아야 한다고!"
박진철이 이준의 머리를 향해 정조준했다.
살의가 번뜩였다.
이준은 흐르는 피를 무시하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드릴을 벽에 밀어붙였다. 벽이 거의 뚫리기 직전이었다.
"네 놈의 운도 여기까지다...!"
박진철의 소름끼치는 웃음이 이어졌다.
"아니. 역사는 정원사가 아니라... 그 땅에 뿌리내린 씨앗들이 만드는 거야!"
이준이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인가.
아아...
아버지의 얼굴, 사진 속 할아버지의 모습.
역사학자가 되기 위해 꿈꿔온 지난 날...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지금까지 자신의 숙명임을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박진철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지하 입구 위쪽에서 눈부신 빛의 기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