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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Aug 22. 2022

'중년 여성'은 어떻게 늙어 가는가?

오늘도 할리땡 카페에서 글을 쓴다. 

사실 오늘은 아주 산뜻한 날이다. 왜냐하면 오늘 개학 첫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시작은 참 후레시 하였는데, 제목을 쓰고 나니 왠지 엄청나게 칙칙해졌다.

브런치 글쓰기 플랫폼 특성상 맨 첫 줄에 제목이 왕만 하게 써지는데, '중년 여성의 늙음'이라는 주제가 공공장소에서 보이기에 스스로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년 여성'이라는 단어를 살짝 지운 후 글을 써 내려간다.

어쩌다 주제가 이렇게 되었지만, '중년 여성'이라는 단어도 '늙음'이라는 단어도 완전 별로다.

하지만 슬프게도 지극히 현실적인 단어다. 나에게.


 여러모로 별로인 주제지만, 아직 40대가 되지 않은 청춘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나와 같이 늙어가는 40대들에게 공감을 받고 위로를 주기 위해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중년이 되면 달리지는 점은. 

첫째로, 몸매가 달라진다.


40대가 되면 신진대사 능력이 떨어져서 20대와 똑같이 먹고 똑같이 움직여도 살이 100미터 밖에서부터 전력 질주로 달려와서 붙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배불뚝이 아줌마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30대 중반부터는 미친 듯이 운동을 하기를 추천한다.

혹시라도 매장에 걸려있는 예쁜 옷을 모조리 살 수 있는 돈이 수중에 있는데 어울리는 옷이 없어서 한 장도 살 수 없는 아주 곤란하고 슬픈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물론 돈이 없어서 못 살 수도 있겠지만, 혹시 로또라도 당첨돼서 부자가 될지도 모르니 그때를 위해서 운동을 해두자. 소수의 너무 말라서 고민인 사람들 빼고 40대가 되었을 때 그 예쁜 옷들을 입지 못할 확률이 로또 당첨 확률보다 높기 때문이다.


둘째로, 머리숱이 없어진다.


20대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은 미용실을 드나들며 매직 스트레이트라는 것을 미친 듯이 해댔다.

머리숱이 많아 부한 것이 싫어서 머리카락을 머리통에 착 붙게 만드는 파마 기술이다.

머리에 착 달라붙어 하늘거리는 머리카락들로 인해 머리도 작아 보이고 몸도 야리야리해 보였다.

만약 지금 내가 그 시술을 한다면 달덩이를 닮은 골룸이 될지도 모른다.

어릴 적 엄마들이 왜 그렇게 머리 뽕에 목숨을 걸며, 머리를 사자처럼 부풀리셨는지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

보통 여자들은 애를 낳을 때마다 머리숱이 줄어드는데, 출산을 많이 한 어미 개를 보면 털에 윤기가 하나도 없이 볼품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얼마 전에는 10대 시절부터 엄청난 곱슬과 머리숱으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던 친구가 아이 셋을 키우고 정수리 안쪽에 부착하는 인공 머리 뽕의 효과가 얼마나 탁월한지에 대해 나에게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미리미리 머리 뽕과 흑채, 헤어케어에 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여 두 자.


셋째로, 머리가 나빠진다.


출산 이후로 아이를 키우면서 기억력이 극도로 안 좋아졌는데, 처음에는 아가들을 키우니까 워낙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깜박깜박하는가 보다 했지만, 애들이 웬만큼 자란 지금도 여전했다. 알고 있던 단어나 정보가 생각이 안 나거나 며칠 전에 있었던 일들이 기억이 안 나는 일들이 잦았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나 단어를 익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뇌도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일까? 뇌도 몸도 늘 하던 편한 것만 찾게 되는 것인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본어를 말할 수 있게 된 후로 영어회화에도 관심이 생겨서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해왔는데, 그 기간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영어와 담쌓고 지내다 다 늙어서 공부를 하려니 중학 영단어도 헷갈리고 어려운 단어는 몇 백번을 반복해야 겨우 외워질까 말까였다.

하루는 식탁에 앉아 중학 영어 독해 책과 씨름하는 날 보며 남편이 가소롭다는 듯, 한 마디 한다.


"지금 이걸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 학교 다닐 때 뭐 했냐. 쯧쯧" 


아구창을 한대 날리고 싶은 얄미운 멘트이지만, 내가 돈 안되는 이런 뻘짓들을 할 수 있도록 가정 경제의 큰 역할을 하는 남편님이기에 조용히 귀를 막는다. 영어 공부가 재미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머리에 자꾸 입력해야 치매에도 안 걸린다고 하니 나의 뇌 건강을 위해서라도 멈추지 않겠다.


넷째로, 뭔가 우울이 근접해 있다.


20대의 젊음이란,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름답고 생기 있고 활기가 넘친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친구들도 모두 저마다의 젊음을 즐기느라 바쁘다. 방황하는 젊음조차 눈부시고 아름답다.

나이가 들면 외모도 에너지도 주변 환경도 인간관계도 변한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하락한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늙어간다는 것은 작아진다는 것이다. 꿈도 에너지도 인간관계도 기억력까지도 말이다.

좋은 일은 별로 없다. 새로운 일도 별로 없다. 가만히 있으면 온통 우울한 일 투성일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료하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난 가만히 있는데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 난 가만히 있지 못하고 그것에 겨우 대처하고 그 재미도 없는 일들을 하루하루 힘겹게 이겨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노력해야 한다. 행복하려고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고 말이다.

자꾸 작아지는, 나빠지는 내 삶을 어떻게든 악착같이 끌어올려야 한다. 내 삶의 의미, 재미,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이 나를 정복하여 나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 아직 넘어야 할 삶의 고비들이 분명히 많이 남아있다. 그 고비들을 너무 힘들지 않게 넘기 위해서, 설령 넘다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는 이유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그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인정하자. 늙어감을. 분명 슬픈 일이지만 슬퍼하지는 말자. 늙어가는 나를, 내 삶을 사랑하자.


조금은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된 50대의 나를...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벌써 몇 백 편의 글을 써낸 60대의 나를... 어느 외국의 아름다운 해변의 작은 카페에서 내가 그린 만화의 콘티가 웃음이 나는 70대의 나를 상상하니,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나의 늙은 미래가 기대가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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