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의미

우리는 타인을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

by 이브와 아담
뭐라 말 좀 해봐.

그 사람은 나와 갈등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사람은 내 침묵을 답답해했다. 이상하다, 원래 이렇게 입을 꾹 닫진 않는데. 갈등 상황에 놓일 때마다 침묵은 날 약하게 만들었다. 이상하게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 사람의 무례함을 쉽사리 지적할 용기가 없었다. 물론 그 사람을 자랑스럽게 지적할 만큼 굳이 내가 뛰어난 것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서운함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관자놀이를 지끈지끈 감싸고 있는 이 두통이 벗겨질걸 알면서도 난 입을 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내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이 손가락의 정체가 뭘까 고민하던 어느 날, 난 손가락의 주인을 찾아냈다. 이건 그 손가락 주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를 만나고 나서, 나는 상대방의 무례함을 함부로 지적할 수 없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하나 둘 만들어가던 시기에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신입생 OT 때 참석하지 않았고, 오전 수업에는 늘 결석하기 일쑤였으며, 누군가가 인사를 하면 제대로 받아주지도 않는 데다가, 어쩌다 교수님이 말을 거시면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는, 무슨 만화에나 나올 법한 ‘차도남’이었다. 애들 사이에서 당연히 평판은 안 좋았고, 공부는커녕 평소에 뭘 하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의 은둔 생활을 하던 그(편의상 P)였다.


어느 날 P와 함께 조별과제를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조원들은 P를 유령 취급하며 과제 분담에서 아주 제외시키다시피 했다. 아무리 붙임성 없고 무례하게 굴던 그였지만 눈빛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같이 하는 조별과제인데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기왕 같은 기숙사 건물 사는 거 방에나 한 번 찾아가 보자고 다짐했다. 그날 저녁, 걱정 반 안고 그를 찾아갔는데, 내 시야에 처음 잡힌 그는 손에 2리터짜리 페트병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페트병 안에는 투명한 액체와 산딸기(?) 같은 과일들이 담겨 있었다. 조별과제 관련한 얘기를 하겠다는 생각을 싹 잊고 난 물었다.

너 뭐해?
술 담그는데.

우와.. 그 자리에서 바로 친구들을 불렀고 P는 그렇게 우리들과 친해졌다. 아니, 친해졌다기보다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다가갔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도 이 상황이 싫진 않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P와 말을 트게 되면서 조별과제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수업시간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그가 이 정도로 참여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대학 동기들 중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아는 멋진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사실 그 친구 덕분에 우리는 P와 계속 교류할 수 있었다. 나는 P와 술자리에서, 산책길에서 종종 시간을 같이 보냈다.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몇 번 얘기해보니 그는 글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당시 내 주변에 그런 친구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기에, 나는 그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P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의 무례함이 나에겐 쑥스러움, 어리숙함으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의 무례함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는 타인의 인사를 웃으며 받아줄 방법을 몰랐던 사람이었고, 어른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어색할 뿐인 사람이었다. 물론 이걸 몰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싫어했지만. 공동체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공동체의 규율도 잘 몰랐고, 흡연 금지 장소에서 줄담배를 피우다가 선배들한테 몇 번 걸리기도 했다. 대학교 선후배 간 군기 잡는 문화가 거의 사라진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P는 선배들한테 찍혀 그 레트로 문화를 부흥시켜놨다. 그렇게 P는 우리 과에서 낙인이 찍혔고, 난 그의 무례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다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닌데.


어느 날, 처음으로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차도남 이미지에 걸맞게 무심한 태도로 넌지시 내게 제안했다. 너 여행 많이 못 가봤다며. 나랑 같이 여행 가자. 평소답지 않은 행동. P 나름의 무심한 제안이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용기 낸 행동이었다. 내가 여행 가고 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고마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지금 가자.
응?

얘기가 나오자마자 저녁 먹고 떠난 여행. 사실 별거 없었다. 그냥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고속도로가 나온다. 그러면 고속도로를 걷는다. 밤에는 어차피 차가 별로 안 다니니까 위험할 것도 없었다. P는 혼자서도 이렇게 많이 다녀봤는지 도보 여행을 위한 모든 장비들을 구비해놓고 있었다. 3인 이상 사이즈의 원터치 텐트, 블루투스 스피커, 깔판, 랜턴, 바람막이 등 다양한 물품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들을 구매한 뒤 배낭에 비닐 몇 장과 휴지들을 챙기고 우리는 길을 떠났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거 완전 로드 트립이네.


여행의 취지에 걸맞게 다양한 사건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길 잃은 커다란 개를 보며 처음으로 활짝 웃는 P의 미소를 봤고, 어둑해진 밤 고속도로의 정적을 깨고 지나가는 차들이 간혹 보이면 우리는 블랙박스에 찍힐까 봐 킥킥 웃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때로는 고속도로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으며, 도로 저편에서 웬 사람 형체를 본 것 같아 지레 겁을 먹고 달음박질치기도 했다. 걷다가 심심할 때면 넬, 윤하 노래를 틀어 흥얼거렸고, 고민거리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기도 했다. 걷는 동안 많은 상황들이 있었음에도 P는 나와 보폭이 비슷했다. 다행이었다.


여섯, 일곱 시간쯤 걸었을까, 시계를 보니 새벽이었다. 운 좋게 도로 한쪽 끝에 공사 중인 평평한 터를 발견해 그곳에 텐트를 쳤다. P가 준비를 잘 해온 덕에 편안한 잠자리가 될 것 같았다. P는 가방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나보고 한 번 읽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교양수업 과제였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두 페이지로 요약해보는 과제, 일종의 간이 자서전이었다. 나름 취향에 맞는 과제였나 본지 정성스레 적은 내용에 대한 감상을 듣고 싶었나 보다. 그가 만들어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집중해서 그의 글을 읽었다. 폭력을 일삼으며 나중에는 재산을 들고 가족은 두고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우울증이 담긴 그 글을.


P가 달리 보였다. 그의 무례함은 무지가 아니라 방어기제였다. 언젠가 따돌림을 겪은 적이 있다고 얘기했던 그는 분명 대학 동기들의 인사에서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악몽을 떠올렸을 것이고,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뒷모습에서는 권위적이고 무책임했던 아버지(P의 아버지는 학원 교사셨다)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의 냉담한 태도는 남들에게 불안을 들키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에 의해 생긴 그의 마음속 흉터는 그날까지도 아물지 못했다. 술의 힘을 빌려서였을까. 모두가 잠든 시간, 그를 감싸고 있던 모든 것들과 동떨어진 도로 한복판 텐트 안에서, 그는 시원하게 아버지를 욕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침묵뿐이었다.


그 여행 이후, 나는 누군가의 무례함을 목격하면 그 행동 이면에 숨겨진 흉터들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P를 손가락질할 수 없었듯, 누군가의 무례한 행동에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무례한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아픔이 있어도 상대방 혹은 스스로를 속여가며 괜찮은 척, 쿨한 척 살아간다. 그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기에. 우리는 그 평범함에 부합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어쩌면 무례한 사람들은 내면의 흉터를 감추기엔 그 면적이 너무도 넓어서, 애써 쿨한 척하며 타인과 스스로를 속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무례함을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무례한 행동을 쉽게 지적하는 것 또한 어쩌면 다른 무례함이 될 수 있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 오히려 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다. 너무도 다르고 특별한 존재들인데도 ‘평범함’에 부합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변수들을 견뎌내고 있는가. 남들이 보기엔 별거 없는 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쏟아붓고 있는가.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런 솔직한 무례함을 참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꺼이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그 어렵고 대단한 조율의 과정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율의 과정 역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서서히 스스로의 내면을 갉아먹기 시작한다면, 솔직한 의사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설령 그게 상대방에게 무례함으로 비칠지언정. 스스로를 힘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전통이 있다면 그 전통의 유통기한은 이미 끝난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걸 자꾸 섭취하면 몸이 상한다. P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무례함 속에는 ‘유통기한 지난 전통’으로 인한 내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무턱대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어쩌면 성급한 행동일 수 있다.


지금은 P와 연락이 끊겼다. 이젠 그가 뭐하고 지내는지 알 방도가 없다. 편견 없이 P를 대했던 대학 동기와는 요즘도 연락하며 지내는데, 우리 둘 다 종종 P의 근황을 궁금해하곤 한다. P 찾아 삼만리라는 우스갯소리나 하며. P는 나와 보폭이 비슷한 친구였지만, 발걸음의 방향이 달랐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어두운 터널을 헤쳐 나가야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터널을 지나기엔 아직 집 가스밸브를 잠그지 않고 나온 사람이었다.


솔직한 그의 무례함이 언젠가 모두에게 진심으로 다가올 날이 오길 바란다. 그가 천천히 내면을 정돈하여 솔직함의 주파수를 조정하고, 그동안 배척해왔던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 원하던 방향으로 맘 편히 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어두운 터널 안에서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인연을 반가워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며 서로의 앞길을 조금이나마 밝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언제나 널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나에게 침묵의 의미를 부여해준, 내 고마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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