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2017, 2019)
우리 모두에게는 상처가 존재한다. 그 상처의 종류와 깊이는 제각기 너무도 달라 평생 풀어야 할 숙제로 다가온다. 만일 이를 극복했다 할지라도 고통은 언제나 다시 찾아온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소녀는 어른이 되어 강압적인 남편을 만나게 될 수 있고 어머니의 통제 속에 살았던 소년은 아내의 감시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사랑의 아픔이 있는 소년은 소녀를 마음속에서 영영 지우지 못할 수 있고 종교를 믿는 소년은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정신적으로 더 피폐할 수 있다. 마치 27년 주기로 데리 마을을 찾아온다는 미친 광대 페니와이즈처럼 우리는 외부가 주는 상처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처를 내면화하여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트라우마가 된다.
영화 ‘It’은 미국의 유명한 장르문학 작가 스티븐 킹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을 바탕으로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했던 1980년작 영화 샤이닝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이 깐깐한 작가님도 이번 영화는 너무 좋으셨나본지 직접 출연까지 하시며 이 영화에 대한 사랑을 어필하셨다. 스티븐 킹 작품의 커다란 특징은 인간 감정의 어두운 부분을 형상화한 존재가 작품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이다. ‘샤이닝’에서는 미국이 외면한 그들의 역사적 잘못을 형상화한 오버룩 호텔이, ‘그것’에서는 두려움을 형상화한 광대 페니와이즈가 그 존재였다. 페니와이즈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 광대의 모습을 한 괴물이다. 그는 겉모습을 광대 뿐만 아니라 강압적인 아버지, 나병 환자 등 다른 모습으로도 바꿀 수 있다. 그는 먹잇감의 상처, 트라우마를 귀신같이 알아채서 그 모습으로 변신해 두려움을 먹고 산다. 한마디로 말해서 페니와이즈란 곧 두려움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두려움에 대처해야 하는지,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두려움을 자양분 삼아 데리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광대 페니와이즈를 무찌르는 영웅들은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다. 바로 루저 클럽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뚱뚱하거나 유대인이거나 멍청하게 생겼다거나 말을 더듬는다는 등등의 이유로 따돌림, 괴롭힘을 받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다. 페니와이즈에게 이들은 훌륭한 먹잇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아 페니와이즈를 무찌른다. 그를 죽이는 방법은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거나 하는 방법이 아니다. 바로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그동안 데리 마을 사람들이 페니와이즈를 해치우지 못했던 이유이며 오직 루저 클럽만이 페니와이즈를 해치울수 있었던 이유이다. 루저 클럽의 아이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믿음의 도약, 결속력은 더 강하게 주어지는 법이다.
왜 괴물 페니와이즈는 그 많은 모습들 중에서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작가 스티븐 킹은 왜 하필 두려움을 광대로 형상화하였을까? 이 이야기를 경험하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을까? 아마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극복하는 것은 ‘한끗 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로 광대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광대는 본래 무서움을 조장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었다. 광대는 애초부터 희극 직전 무대 준비과정에서 관객들의 지루함을 해소해주기 위한 유흥과 재미의 존재였다. 하지만 진하고 익살적인 강조를 주는 화장, 즐거움 속에서 한 끗 차이로 묻어 나오는 섬뜩함이 아마 광대 공포증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을 우리는 종종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려움의 실체가 아니라 그 감정만을 마음속에 깊게 간직한 채 쉽게 놓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면 인생에서 꽤 많은 두려움과 창피함을 생각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세상의 모든 루저들은 미움받을 존재가 아니라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며 그들은 나중에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알아야 한다. 세상이 자신에게 퍼붓는 상처들에 대해서. 그들은 자신들을 옭아매는 낙인과 편견들을 보란 듯이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자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하며 만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상처를 자양분으로 삼아 더 발전하는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