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그 너머에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외- 필립K. 딕

by 이브와 아담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대화에 참여하는 일에 가깝다.

필립K. 딕의 작품은 논쟁적이다. 문장의 표현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테면 버지니아 울프를 찬양하는 독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라 한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의 인정을 받는다. 스크린에 화려한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수놓는 것을 중시하는 할리우드는 필립K. 딕의 작품을 찬양한다. 대표적으로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매트릭스 등이 있다. 그러면서도 할리우드는 그의 작품의 아이디어를 차용하기만 할 뿐 더 이상의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는 2막과 3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이야기를 발돋움 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활용에 그칠 뿐 세부적인 것까지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의 장편 소설을 읽던 단편 소설을 읽던 등장인물들에는 깊이가 없고 서사도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앞서 언급된 단점들을 모두 상쇄할 만한 범접할 수 없는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그 아이디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순과 음모를 들춰낸다.

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실재하는 세상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주입한 환상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실제 기억도 종종 가물가물해지는 경험을 하는 마당에 만일 누군가가 잊을 수 없는 생생한 생각을 몰래 주입한다면 우린 그 생각을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기억이나 현실을 조작할 기술을 연구해 우리의 현실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현실이 진정 타인이 받아들이는 현실과 동일한지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하는 색깔을 상대방도 파란색이라 인지하지만 실제 상대방이 생각하는 파란색은 사실 내가 생각하는 빨간색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필립 K. 딕은 우리가 오감으로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 진정한 현실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정말 통제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의 행동으로 인한 반작용이 진정 우리가 의도했던 생각대로 흘러가는 반응인지 작가는 끊임없이 묻는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는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상을 전체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감이라는 통로를 통해 거쳐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 ‘옛 선조들의 믿음’에는 신(GOD)이 등장한다. 그 신은 인민당의 최고통치자로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지휘관스러운 모습을 하며 TV에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신의 모습은 우리가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투명하고 흐릿한 경계가 겨우 윤곽을 잡고 있으며 그것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물흐물 움직이며 우리에게 무관심하고 심지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인민당의 최고통치자의 모습으로 보는 이유는 정부에서 나라의 식수 시스템에 특수한 약을 투하해 전국민의 감각을 일정 수준 둔화시키고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분명 필립K. 딕은 정부가 언론을 조종하여 우리가 봐야 하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의도대로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성을 꼬집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에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흑막 속에 감춰진 거대한 힘의 세력이 존재하고 아무리 대항하려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힘의 불균형 속에서 낙담하고 체념하는 인물들을 그는 주로 묘사한다. 그에게 SF는 현실에 대한 그만의 생각, 철학, 창의력을 묘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우리의 경쟁 사회가 문제야.
강한 자가 살아남는 시대가.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권력을 가진 자가 살아남는 거지.
그리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거야. 강력하고 사악한 늙은이들과 무력하고 온화한 어린 아이들의 대립 구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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