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by 이브와 아담

어릴 적,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였다. 한번 세차게 울어 버리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었으니까. 어리다는 이유로 나는 충분히 우선순위 안에 들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일이었고 주인공 딱지를 떼는 일이었다.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궂은일을 할 단계였다. 더 쉽게 얻지 못하게 된다는 불만은 아마 내 사춘기 시절의 격동에 무의식적으로 한몫했을 것이다. 그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 어쩌면 성장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존재는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곤 한다. 본래 주인공은 행복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마 무척이나 초라할 테다. 상상과 현실의 좁혀지지 않는 괴리감을 때로는 인정하고, 때로는 세차게 부정하며 우리는 머릿속 주인공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간다. 이 녀석과 싸워 이기는 게 맞는 걸까, 져 주는 게 맞는 걸까. 모두를 위해서 침묵하는 게 옳은 걸까, 비참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소리치는 게 옳은 걸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을 때가 있는 만큼 때로는 주변인이 되어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노력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난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다른 한 명의 타인보다 결코 객관적으로 소중하지 않다. 그저 인류라는 바다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물방울일 뿐이다. 천진난만하게 장래희망이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아이처럼 어릴 적 우리 머릿속은 온통 자신의 목소리로 가득했겠지만, 타인과 세상을 배우면서 우리는 세계가 만든 틀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를 정교하게 깎고 다듬는다. 그렇게 우리는 단정해지는 동시에 개성도 잃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주변인이 된다. 스스로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생각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마자 잿빛의 착각으로 순식간에 변질된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각자의 힘으로는 가끔 세상이라는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한계라는 벽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 벽은 환경일 수도 있고, 적일 수도 있고, 어쩌면 동료일 수도 있다. 이들로 둘러싸여 우리는 쉽게 삶의 길을 잃고 경직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통조차 느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있으면서 죽은 자가 된다. 고통이라는 에어백 없이 살아가는 어둠이 된다. 이대로 만족할 것인가? 빛이 사라진 혼돈에 익숙해질 것인가? 바닥까지 찍은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믿음’이다. 우주 창조(Big Bang), 거대한 폭발에 대한 믿음이다. 완전한 어둠. 무(無)의 세계에서 발생한,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밝은 빛. 인과의 사슬에 얽히지 않은 갑작스러운 기적. 어둠 속에서 태어난 가장 보잘것없고 형체도 없던 작은 점은 셀 수 없이 많은 찬란한 별들과 은하를 만들었고, 광활하고 푸른 하늘과 바다를 만들었고, 아름다운 당신을 만들었다. 우주 창조는 기적이다. 인과의 사슬로 얽히지 않은, 말 그대로 ‘발생’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바로 ‘선택’을 통해서. 진정한 선택 역시 인과관계에 얽히지 않으며 우주 창조와 비견될 수 있는, 물리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킨다. 어둠 속에서 빛을 선택할 ‘믿음’만 있다면, 설령 주인공이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빛날 수 있다. 주인공이라는 착각에 도취되지 않고, 진정 빛이 필요한 곳에서 찬란하게 빛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임을 ‘선택’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한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 글은 테드 창의 단편소설 [옴팔로스]에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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