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갖고 싶었다. 이사 오기 전에도 식물과 꽃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드디어 노지가 생겼으니 얼른 나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완성하고 싶었다. 마을의 다른 집 정원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정원 베스트를 골라보았다. 어떤 식물이 있는 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기본적으로 준공 승인을 받기 위해 마당 구획과 나무 몇가지, 철쭉, 남천 같은 흔한 식물들은 심어져 있었지만,크고 작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아늑한 비밀의 공간이자내가 좋아하는 꽃들로 가득 채워진 정원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그래서열심히 정보를 찾고 식물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길에서 만난 식물로 가득찬 워너비 정원
본격적으로 식물에 탐닉하다 보니, 식물을 모으는 방법은 참 다양했다. 제일 쉽고 간편한 방법은 화원에가서 식물을 사와서 바로 심는 것이다. 돈과 심는 수고만 하면 바로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지만, 마당이라는 넓은 공간을 커버해야 하기에 개체수가 많이 필요해서, 하나 하나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희귀하고 건강하고 큰 식물일수록 가격도 비싸다. 직접 키워서 하는 편이 저렴하겠다 싶어 다른 방법을 알아보았다.
두 번째 방법은 흙꽂이었다. 흙꽂이는 식물의 줄기 그대로 땅에 심어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뿌리가 생겨나면 그 가지는 죽지 않고 또 하나의 식물로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장마철에 수국 흙꽂이가 잘된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사 오고 처음으로 화원에서 사와서 심은 식물이 바로 이 수국이다. 수국을 늘려서 꽃 잔치를 하고픈 마음에 장마철을 기다렸다가 우리 집 수국 3종류의 가지를 마구 잘라서 흙에 꽂았다. 하라는 대로 했는데, 수국 줄기에서 뿌리는 나오지 않았다. 17개나 꽂아놓았는데, 뭐가 안 맞았는 지 모조리 썩었다. 의욕만 앞선 식물 바보는 애꿎은 수국만 민둥산으로 만들고 끝이 났다.
삽목 시도는 계속된다
세번째로
마지막으로 제일 오래걸리고 복잡한 것이 씨뿌리기였다. 파종으로 멋진 정원을 만드는 유튜버를 본 것이 화근이었다. 멋진 꽃 정원 영상을 보여주는 데 거의 다 자기가 파종한 것이라니 더 멋져보였다. 나도 호기심 삼아 씨앗 판매 쇼핑몰을 들어가 보니 씨앗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꽃 모종은 한 포트에 최소 3000원, 구근은 한 개에 천원은 하는데, 씨앗은 한 봉에 20개 이상 들어 있는 데 3000원이었다. 표지에 있는 예쁜 꽃 사진만 보고 행복 회로를 돌리며 마구 담고 주문하니 두툼한 씨앗을 받았다. 다 잘 자랄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땅 있으니 도전은 해보자 싶어 마구 담았다.
9월이라 아직은 날씨가 따뜻하여, 노지 직파로 막 뿌렸다. 타임, 딜, 오레가노, 세이지, 시금치는 하나도 싹이 안나고, 루꼴라, 공심채, 겨자, 상추, 당근만 드문드문 싹이 올라왔다. 꽃은 다 전멸하고 한련화만 힘차게 솟아났다. 한 달을 더 기다리니 미약한 펜스테몬 새싹이 2개 올라왔다. 무언가 불규칙적으로 올라오기도 하는 데 잡초일거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과연 파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신경쓸 것도 참 많았다. 첫 파종이 망했지만 이 가을이 아까워 한번 더 도전해 보기로 하고 다시 씨앗을 주문했다.
시장에서 파는 투박한 씨앗들이 더 잘 자라는 것 같아서 종묘사를 이용했다. 이번에는 꽃의 아름다움 보다는 "노지월동" 4글자 붙은 꽃으로만 3종류(에린지움, 꽃범의꼬리, 원추리)를 담았다. 잡초를 이기고 땅을 덮어줄 무난한 지피식물 3종류(비비추, 스타키스, 옥잠화)도 넣고, 실내에서 키워볼 라넌큘러스도 골랐다. 식물마다 기본 특성은 지켜줘야 해서 이번에는 스프레드 시트에다가 식물 이름과 발아온도, 발아 기간, 광발아 여부를 적어서 정리하고, 부자재인 화분, 포트 판도 넉넉히 구입했다. 바깥에 내놓아 직사광선의 강력한 햇볕을 주고 물은 화분 구멍을 통해 아래에서 스며드는 방식으로 줬다. 열흘이 지난 지금 7종 중에 2종만 우루루 싹이 텄다.
열정 넘치는 씨뿌리기와 일부 자라난 새싹들
여러 차례 파종과 실패의 사이클을 겪으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뿌리가 나고 새싹이 난다고 한 들, 정원을 채우기에는 많이 미약하고, 공간은 여전히 휑하다. 1년차 정원은 쉽지 않다. 최고의 정원을 빨리 갖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달음박질해보려 했지만 식물은 재촉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뿐더러 세심하지 못한 관리에 식물은 죽음이나 무응답으로만 응답할 뿐이었다. 은퇴자도 아니고 일하며 사는 일상에 식물 키우는 일상이 스며드는 데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하다. 정원 1년차는 터 잡는 시기이고, 아직은 겪어봐야 할 것이 많았다. 1년차 정원 가꾸기는 식물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식물 가꾸는 노하우도 없으니, 아무래도 크기가 큰 식물을 들여서 심어서 죽지 않고 적응 잘하게 보살펴 줘서 정원을 채우던지, 아니면 백일홍 같은 알아서 잘 크는 흔한 야생화 씨앗을 대량으로 구해서 우루르 뿌려서 꽉 채워보며 다른 고급 식물들도 도전해 볼 경험을 쌓던지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쉽게 예쁜 꽃을 보여준 고마운 구근 식물들
날이 추워진 10월 말인 요새 파종은 그쳤고, 무난하게 자랄 것 같은 구근류인 수선화, 꽃무릇, 작약, 아이리스를 소량 심엇다. 이제 시작이지만 해가 갈수록 커지고, 많아지고 탐스러워질 꽃을 기대하게 되었다. 땅만 생기면 다 될줄 알았던 3월과 달리 소소함에 만족하는 지금의 모습은 많이 김이 빠지지만, 정원 선배들도 '어차피 완벽한 정원은 없다'고 말한다. 같은 식물들을 심어도 매년 기후도 다르고 잘되는 식물도 다르다고 한다. 이 말에 위안을 얻어보며 창밖으로 아직 빈 칸이 많은 정원을 내려다 본다. 어차피 나의 정원이며 내 집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정원 또한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