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정원 Mar 09. 2023

주택의 봄맞이

단독주택 살아보니 #12

 꽃샘추위가 오겠지만 그래도 3월 중순의 날씨는 패딩을 벗게 했다. 날씨가 포근해진 기념으로 마당에 죽은 식물들을 끊어냈다. 식물이 일 년생인지 다년생인지 지식이 없어서 그간 일단 두었지만 말라버린 윗부분은 어차피 정리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아 밑동만 남기고 다 끊어냈다. 푸른 향기로 나를 즐겁게 했던 페퍼민트는 마른 이파리에서도 향기로운 민트향이 올라왔다. 인공적인 향수를 안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런 자연의 향기는 언제든 좋다. 뿌리도 싱싱한 것이 올해도 작년에 자리 잡은 자리를 안 놓아줄 것 같아 밑동만 남기고 윗부분은 다 걷어냈다.


 지난 겨울에 어느 정원 고수 유튜브를 보고 낙엽을 덮어서 식물들의 월동을 준비했다. 길에다 남겨놓은 낙엽 봉투를 지고 와서 수국 뿌리와 수선화 구근 등지에 덮어 놓았다. 냉해를 입은 식물은 없지만 결정적으로 낙엽이 잔디와 온 마당에 굴러다녀서 지저분해졌다. 앞으로는 낙엽 말고 다른 월동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낙장불입이라지만 이리저리 흩어진 낙엽을 주워 나갔다. 키가 점점 커지며 노랑 얼굴을 터트릴 준비를 하는 수선화 구근 위 낙엽을 걷어보니 초록의 기운이 느껴진다. 지난해 뽑아도 뽑아도 새로 생겨나던 머위가 자기를 잊었냐며 다시 낙엽 아래서 열심히 올라오고 있었다. 환하게 열린 땅 위로 아마 잡초들도 올라오겠지만 일단을 낙엽을 모두 치우고 있다.


봄의 전령사 튤립과 수선화

 

 음식물쓰레기만 나뒹구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빈 텃밭에 1년 농사 성공을 기원하며 거름을 뿌렸다. 평생 농사를 지으신 100살이 다 된 우리 할머니가 후한 인심으로 거름 두 포대나 주셨다. 차로 실고 오는 내내 멈칫하게 되는 냄새에 망설여졌지만 식물을 잘 자라게 해 준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퇴근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텃밭에 섞었다. 돌도 골라 주는 데 할때마다 항상 돌이 나오는게 참 신기하다. 어설픈 도시 농부에게도 2년 차 수확의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올해는 텃밭에 뭘 사다가 심을지도 미리 다 생각해 뒀다.마음이 앞서서 '이제는 심어도 되겠지'하고 시장 모종집을 찾았는데, 내가 사는 지역은 5월 5일 어린이날 쯤에나 심어야 냉해가 없어서 아직은 모종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기도 했다. 텃밭 시무식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돌을 고르고 거름을 섞은 텃밭

 날씨와 거름의 기운을 받아 기다렸던 일을 치렀다. 겨우내 만들어 왔던 모종을 심는 것이다. 지난 10월에 씨를 뿌려 살아남은 델피니움 2개와 램스이어 4포트 정도의 모종이 생겼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탓에 다양한 식물들이 초록다리를 건너고 최후에 6 포트가 남았다. 포트에서 꺼내보니 역시 뿌리가 돌돌 감긴 게 실했다. 준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는데, 긴 겨울을 끼고 키운 시간의 힘인듯 하다. 텃밭에 섞고 남은 거름을 넉넉히 섞어주고 모종을 땅으로 옮겼다. 길었던 추운 겨울을 집 안에서 함께 한 생명들이라 마음이 남달랐다. 아직 추운 날씨에 걱정도 되지만 잎과 키를 어디까지 키우며 얼마나 예쁜 꽃을 보여줄는지 기대가 된다. 이제 유리를 거치지 않은 진짜 태양빛을 쬐고 바람 맞으며 가로막히지 않은 땅에서 어떻게 뿌리를 뻗어나갈테다. 





실내 모종 드디어 방생되다

  2월말부터 씨를 종류 뿌렸다. 첫 해가 다품종 소량생산이었다면 올해는 소품종 다량생산으로 가기로 했다. 벌레가 안 생기고, 손이 안 가며,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식물만 키울 것이다. 냉동실에 보관중인 다양한 씨앗 중 꽃 인심이 후하다는 페튜니아, 버들 마편초를 골랐다. 버들마편초가 제일 먼저 새싹을 내밀었다. 바질은 작년에 워낙에 농사가 잘 되서 올해는 편하게 밖에서 파종을 했다. 작년에 직장에 버려진 바질 화분에서 채종한 싱싱한 씨앗을 물에 불려 개구리 알처럼 만든 다음 파종 트레이를 꺼내 양껏 심었다. 식물, 사람, 땅 사이에도 궁합에 있는지 잘 되는 것은 참 잘되고 안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된다. 그런면에서 나랑 바질은 잘 맞는다. 아직 고요한 포트지만 올해 바질 밭을 만들 생각에 바라만 봐도 든든하다. 


 미뤄왔던 분갈이를 했다. 훈훈해진 날씨에 실내에 대피중인 블루 아이스를 밖에 내놓고, 다용도실에서 대기중이던 칸나 구근도 화분에 심었다. 칸나구근은 얼마나 강력한지 물 한방울 없는 다용도실에서도 줄기가 올라와서 덮어놓은 뚜껑을 열어버렸다. 실내에서 흰곰팡이가 생길정도로 뿌리가 엉켜있던 몬스테라도 시원하게 뿌리를 풀어주면서 분갈이를 해줬다. 안에서 꽁꽁 숨어있던 식물들이 모두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가니 나도 개운하고 식물들도 얼마나 좋을까. 



 식물을 돌보는 마당 일은 육체 노동이지만 나에게 묘한 위로를 준다. 땅이 있다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귀한 사치이다. 나는 오늘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주택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봄이 옴에 또 감사했다. 일을 다 마치고 돌아보니 지난 주 꽃 눈을 달고 있 매화에 꽃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2023년의 첫 꽃이 왔다. 겨울은 추웠지만 밖에서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견디면 또 다른 시작이 온다는 그런 간단한 진리를 정원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꽃눈과 첫 꽃


                    

매거진의 이전글 특명 식물을 늘려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