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오후 3시 갑자기 피가 비쳤다. 때가 되었다. 남편을 급히 불러 미리 챙겨둔 가방을 가지고 차에 탔다. 긴장했지만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진통이 심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이의 심박수가 크게 들리는 기계를 볼록한 배에 붙여주셨다. 그 소리에 더 긴장이 되어서 간호사 언니에게 뗄 수 없냐고 부탁했는데 아이의 상태를 체크해야 해서 안 된다고 했다. 나중에는 진행이 느려서 촉진제를 놓는다고 했다. 다 처음인 일이라 고개만 끄덕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굴러가고 있었다. 아이를 만난다니. 내가.
내가 누운 자리 옆으로 몇 명의 산모가 잠시 있다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들의 급박함을 보며 부럽기까지 했다. 밤이 깊어지자 통증이 시작되었다. 무통주사를 맞고 싶다고 하자 이미 그 시기가 지나서 줄 수 없다고 했다. 남편과 미리 연습한 복식호흡을 하며 고통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수시로 간호사와 의사가 와서 내진이라는 것을 했다.
‘내가 다시는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수시로 몇 cm가 열렸는지 확인했다. 지름 10cm가 열려야 아이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아이를 출산하는 드라마 속 장면은 하나같이 힘을 주고 있었다.
‘힘주는 것이라면 자신 있지.’
나름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았다. 힘을 주는 시기에 앞서서 오랜 시간 힘을 빼야 했다. 그래야 아이 나올 자리가 열리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있는 힘껏 내 힘을 주는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내 힘을 빼야 하는구나! 처음으로 그 생각이 살포시 와닿았다.
새벽녘이 되자 나와 호흡하며 고통을 나누던 남편이 조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얄미운 마음이 들어 남편의 나온 배를 온 힘을 다해 꽉~ 꼬집었다. 쥐어짰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아앗~~!!
‘지금 누구는 죽을 것처럼 아픈데 졸아?’
‘왜 같이 사랑해서 아이를 낳는데 나만 이렇게 아파?’
남편은 이 일로 오랜 시간 나에게 말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딱 5초 졸았는데 그걸 가지고 그런다고 불퉁댔다. 그 5초의 고통도 혼자 견딜 수 없던 나였다. 이제 막 엄마 딱지를 앞에 두고 대기 중인 엄마였다.
수많은 산모들을 먼저 수술실로 들여보내며
‘아, 옆에서 들으니 꽤 시끄럽구나. 나는 조용히 해야겠다.’
혼자 마음먹었다. 폭풍 같은 진통이 올 때도 죽어가는 소리로
“아파요. 아파요.”
만 거푸 해댔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커져서 시끄럽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야속할 때쯤 나도 드디어 수술실에 입성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십자가 같은 수술대가 있었다.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이 떠올랐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 이렇게 고통스러우셨을까? 가늠할 수 없지만 그 고통을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간호사 언니는 수술대에 내 손을 고정시키고는 볼록 나온 배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소독약을 발랐다. 왜 그때 고기에 된장 바르는 것 같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을까. 여자로 지낸 30년을 졸업하는 자리 같았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첫걸음.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지나가고 무서울 것 없는 어벤저스 여전사의 갑옷을 입는 과정 같았다.
아이가 내려오지 않아 내 몸집보다 2배는 클 것 같은 간호사님이 올라가 박자에 맞춰서 내 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쭈쭈바 아이스크림을 마지막까지 짜내듯이 야무지게. 이제는 진짜 힘을 줘야 하는 때였다. 그때 소리를 지를걸. 시끄럽지 않은 산모가 되고 싶어서 이를 앙 물었다. 훗날 그때 어금니 뿌리 3개 중에 한 개가 부러졌다는 것을 알았다. 반쪽만 살려서 겨우겨우 쓰다가 결국에는 임플란트를 해야 했다.
아이는 37주였음에도 3.7kg이었고 내 배 위에 올려놓으니 살짝 웃었다. 모든 고통은 그 웃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쁨의 눈물, 승리의 감격이 몰려왔다. 비록 아이 머리가 커서 3도 회음 열상으로 조리원 생활 내내 도넛 모양 푹신 의자에서도 쩔쩔 매야했지만 드디어 아이를 만났다. 엄청난 입덧으로 자신의 존재를 뿜뿜댔던 밝음이 내게 왔다. 냉면과 토마토, 우유로 연명하던 나에게 안겼다. 아이를 낳고 회복실에 있는데 엄마, 아빠가 오셨다. 엄마를 안고 얼마나 울었던가.
‘나를 이렇게 낳으셨구나. 이렇게 아프셨겠구나.’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온 존재에 감사했다. 임명장 없는 눈물의 진한 포옹으로 나도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