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취미생활
아침 6시. 결전의 날이 밝았다. 황금 호랑이 무늬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혹시 몰라 여유분의 운동복 하나를 더 챙겼다. 이번에는 이 옷까지 입어볼 수 있기를.. 작년 7월부터 시작했으니 11개월째가 되었다. 벌써 4번째 경기다.
대회 예선전은 3명이 한 조가 된다.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한 명은 심판을 보고 나머지 2명이 돌아가며 경기를 한다. 한 명이 두 번의 경기를 할 수 있었다. 3세트를 먼저 따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였다. 첫 경기에 먼저 심판을 보게 되었다. 경기 룰도 어설퍼서 심판을 잘못 보게 될까 봐 바짝 얼어있었다. 경기를 보다 보니
'어, 이거 해 볼만하겠는데?'
한 명은 나처럼 처음 경기에 나왔다고 했고 다른 한 분은 나이 많은 어르신이었는데 폼이 어설펐다. 1승만 해도 본선 진출이었다. 나름 갈고닦았던 터라 속으로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아~뭐야, 첫 경기에 바로 본선 진출이면 어쩌지?^^;;'
심판을 다 보고 점수를 종이에 적고는 상대편과 공을 주고받는 렐리가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시간을 보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서브를 넣으려는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왼손이 보였다. 그 손을 살며시 잡아주고 싶었다.
‘괜찮아, 내가 연습한 것만 하고 나오자.’
다짐했다. 손바닥 위에서 외로이 놓여있는 하얀 공이 나처럼 보였다.
처음 나왔다던 발랄한 그녀에게 3:0, 시골에서 올라오신 폼 어설픈 어르신에게 3:0. 나는 그들의 밥이었다.
처음은 다 그런 거라고 1년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선배님들이 이야기해 줬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날 저녁 경기장을 나와 남편을 붙들고 탁구장으로 가서 안 되던 것을 다시 연습했다.
널따란 경기장에서 아름다운 포즈와 힘의 강약, 가벼운 발놀림으로 경기하는 고수들의 모습에 흠뻑 빠졌다.
'아~! 나도 저 사람처럼 치고 싶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1세트를 이겼다. 세 번째 경기에서는 2세트를 이겼다. 결론은 예선탈락(예탈)이었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나름의 경향성을 만들며 네 번째 경기를 기다렸다.
탁구. 전혀 관심 없는 운동이었다.
'가장 작은 공이 가장 큰 근육을 움직이는 궁극의 전신운동'이라고 탁구장 앞에 붙어있는 문구를 보면서
‘맞아. 가장 작은 공이 예민해도 너무 예민해. 아무래도 친해지기 힘들겠어.’ 생각했다.
남편이 탁구에 홀딱 빠져서 다닐 때 나는 방해꾼에 가까웠다. 주말마다 나가는 경기에 바가지를 박박 긁어댔다. 남편이 같이 하고 싶다고 몇 해를 꼬드겼지만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누군가 대상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탁구는 번잡스럽게 느껴졌다. 운동할 때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 무렵 요가를 하다가 왼쪽 손목을 다쳐서 운동을 겁내고 있었다. 그 틈새를 노리고 남편의 강력한 꼬드김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한 번 따라가 주지 뭐..‘
가기는 갔으나 6개월은 남편에게 끌려서 갔다. 안 가고 싶은 이유를 수도 없이 찾고 있었다. 땀이 하나도 안 난다. 옷이 안 예쁘다. 한쪽만 쓰는 운동이라 마음에 안 든다. 서서만 치니 왼쪽 허리가 아프다. 오늘은 춥다, 덥다...
나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탁구장 사람들은 나를 환대했다. 그 친절함이 낯설게 좋았다. 테이블 위에서 들리는 똑딱똑딱 다듬잇질 소리가 어느새 경쾌하게 들렸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에 혹하는 마음도 들었다. 저렇게 운동하면 내가 좋아하는 단 음식을 어느 정도는 먹어도 죄책감이 덜 할 것 같았다.
공도 맞추기 힘들어해서 누군가에게 쳐달라고 하기가 미안했다. 남편과 쳐왔던 사람들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온 것 같아 미안하고 나를 전담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미안했다. 로봇방에서 로봇과 칠 때가 가장 편했다. 소심한 모습으로 구석에 있는 로봇과 친해졌다. 어느 정도 치니 보지 않고도 칠 수 있었다. 로봇은 상당히 친절했다. 내가 공 세기, 빈도, 위치를 설정하면 딱 거기에 맞게 공을 보내줬다. 사람들과 공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렐리가 가장 두려운 시기여서 더 로봇과 가까이했다. 하지만 경기에 나가면서 로봇은 친절한 친구였지만 좋은 코치는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공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공간을 치고 들어왔고 그 앞에 번번이 무릎을 꿇어야 했다. 진짜 실력을 갖추려면 안정되고 예상되는 로봇 공이 아닌 어렵고 예상하기 힘든 사람 공을 받아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어른들과는 치기 힘든 실력이었고 초등학생들과 치기로 했다.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할래요. 저도요.”
“왜? 내가 만만해 보여?”
“네. 만만해 보여요.”
아이들은 내 뒤에 줄을 길게 섰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경기 상대가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귀염댕이 o현이를 이기고 기뻐하고 있는 나라니... 참 모양 빠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대의 공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다. 무턱대고 힘을 주면 공이 멀리 나가버렸다. 그렇다고 힘이 없으면 네트를 넘기기 힘들었다. 내 공만 잘 받아넘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상대방 라켓의 기울기, 방향, 공의 세기에 집중해야 했다. 상대가 어리다고 나이 들었다고 얕잡아 보는 순간 졌다.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공의 회전을 빨리 이해했고 공격에 거침이 없었다. 어르신들은 세월의 구력으로 넉넉히 즐기셨다. 상대가 어떠하든 나는 나의 것을 하나씩 익혀가고 해 나가야 했다. 토닥토닥 다듬잇질 소리는 내 힘의 100%를 쏟아놓을 때는 나올 수 없는 소리였다. 70%의 힘으로 상대를 배려하면서 공을 줘야 가능했다. 혼자가 편했던 나에게 같이 토닥토닥하자고, 그게 더 살맛 나는 거라고 말해주는 이 취미생활에 점점 빠져든다. 우리 토닥토닥 같이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