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남았으니 됐어.

초보 캠핑자 여행

by 찐빵

출렁이며 도착했다. 새로 산 타프를 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어둑해지려는 저녁에 도착한 우리는 비몽사몽으로 텐트를 쳤다.

“여보,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했지만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난리고 우리 부부는 텐트 앞과 뒤도 구분 못해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옆 텐트에서는 고기를 구웠고 냄새와 연기가 넘어왔다. 그들은 스크린을 보며 여유 있는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정리된 옆집에서 '앞으로 나란히' 하며 정리된 복숭아가 넘어왔다. 최대한 옆쪽에 쪼르륵 붙어 앉아 스크린을 엿보고 있는 아들들. 보지 말라고 하기에는 미안하고 보라고 하기에는 모양 빠지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심하게 요동쳤다.

‘왜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 고생을 시키고 있어.’


아주 늦은 저녁으로 흑돼지를 급하게 구웠다. 해냈다는 승리감에 냄새와 연기를 마음껏 뿜어댔고 고기는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역시 제주는 흑돼지지!"

우리의 폭죽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배앓이 한번 없던 셋째가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굴렀다. 배를 만져줘도 소용이 없어서 옆 텐트에서 약을 빌려와 먹였다. 쓰러져 자다가 배가 뒤틀리면 또다시 일어나서 뒹굴었다. 짐과 함께 테트리스 하듯 왔는데 저 많은 짐 중에 소화약 하나 없다니 우리는 무엇을 챙긴 것일까.



쉴 새 없이 돌아가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못하고 끝나면 어쩌나 겁이 났다. 달리다 보면 문득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멍해졌다. 즐거워서 시작한 일도 슬그머니 ‘해야 한다’만 남았다. 자꾸 무언가를 하고 동그라미를 치면 그 동그라미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쉬어보자.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일주일 푹 쉬고 오면 좀 나아지려나. 그래,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서 캠핑카로 여행해 보자. 아이들과 캠핑카를 타고 제주도를 누빈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날아오를 듯 자유로웠다.

"기다려라. 캠핑카여~"

아이들은 "꺅~!" 환호성을 질렀다.

그 환호성은 우리의 족쇄가 되어 돌아왔다. 캠핑카를 타고 다섯 식구가 일주일 여행하기에는 입이 쫙 벌어지는 가격이었다. 아이들의 꺅~소리가 맴돌았다. 이를 어쩌지,

‘도저히 말못해말못해~.’

그때 생각난 것이 창고에 박혀있는 텐트. 오~ 나의 구세주여.

우리 차에 캠핑 장비를 싣고 배를 타기로 했다. 남편은 캠핑 장비를 보충해야 한다며 타프, 자충매트, 코펠을 하나씩 사다 날랐다. 남들이 부러워하지도 않는 여행. 2시간 걸려 차를 타고 다시 배 5시간... 그리고 5박의 제주.


아침에 일어나 오늘까지 꼭 먹어야 하는 어묵과 녹은 새우, 다진 고기를 넣어 볶음밥을 해서 먹었다. 여유롭게 여행하고자 미리 준비해서 싸 왔는데 자꾸 재촉이다. 지나고 보니 어디든 다 마트가 있고 신선한 재료가 가득한데 뭘 그리 바리바리 싸 들고 떠났는지. 얼음물이 녹을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다 상해서 버리게 될까 봐 서둘러 해치워야 하는 것부터 먹었다. 먹고 싶은 것을 뒤로해야 했다. 코앞에 닥친 일을 허겁지겁하는 나한테서 멀리 떠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 여기까지 따라왔다. 일 처리하듯 아침을 해서 먹었다.

첫날의 힘겨운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큼한 옷들을 빨았다. 삭아버리기 전에 서둘러서. 설거지 세제를 통에 넣고 발로 밟아 빨았는데 나름 효과가 좋았다. 남편이 빨랫줄을 달아줬고 줄에 널려있는 옷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똑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살랑댔다.

요트를 타고 주상절리를 꼭 보고 싶다는 아들 덕분에 요트란 것을 타보게 되었다. 최대한 깨끔한 흰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선글라스도 찾아 쓰자.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 상상은 파도처럼 바스러졌다. 한 시간 요트를 탄다는데 그 안에 세상과 반쯤은 이별할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주상절리에 흰 파도들이 철퍼덕철퍼덕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 내 속도 같이 철퍼덕거렸다. 기억하자. 어떤 경험은 할 때보다 바라볼 때가 좋다는 것을. 비싼 가격이 고급진 경험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한 여행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말렸고 우리는 수시로 취소할까 말까를 넘나들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빨려 들어온 여행이었다. 우리는 곽지 해수욕장의 맑음과 분홍 낙조에 반해서 몇 번을 더 갔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씻어줄 것 같은 용천수에 덜덜 떨면서도 온몸을 맡겼다.

제주의 바람을 맨몸으로 대하고도 무너지지 않는 돌담. 돌과 돌의 거리가 그것을 지탱해 주었다니. 우리는 가슴에 바람길 하나 정도는 품고 살아야 하는 거였다. 자연의 넘실대는 힘을 담고 용솟음쳤을 땅의 나이테를 더듬으며 겸손히 걸어가야 할 오늘이 보였다. 그 속에서 망아지처럼 달려대고 깔깔대고 흔들거리던 너희들... 사랑하는 것들과 머물지 못해서 아팠다는 것을 알았다.

풀 냄새와 풀벌레 소리, 그늘 속 이야기가 전부여도 좋은 곳에서

'진짜 필요한 걸까?'를 수도 없이 물으며 담았던 그것들을 다시 차 하나에 담고. 이 하나면 살아진다는 삶의 용기를 얻었다.

자연에 폭 담갔다 살아난 이 시간... 이야기가 남았으니 됐다. 아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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