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요리

나의 요리에 대하여

by 찐빵

한참 동안 카레와 짜장을 번갈아 해 먹었다. 결혼 전 늘 바쁜 사람으로 찍혀있었고 엄마와 언니가 있어서 요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복스럽게 잘 먹으면 그것으로 나의 역할은 다한 것이었으니까.

아이 엄마가 되고 이유식을 시작했다. 그때만큼 긴장하던 때가 있었던가. 투뿔러스 한우에 야채 한, 두 가지를 삶아 갈아서 먹기 좋은 온도를 내 몸에 대어 실험하듯 먹였다. 다행히 이유식에서 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잘 익히는 것이 관건이었다. 재료 고유의 맛을 알게 된 시기라고나 할까?

이유식기의 도움을 받으며 나름 열심히 이유식을 먹였다. 셋째 이유식은 매우 짧고 당돌하게 접근했지만 아이는 잘 받아먹었고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나름 붙어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른 요리였다. 간이 맞지 않았다. 익히기만 하니 싱거웠다. 이런저런 건강 상의 이유를 들며 나는 소금 치기를 극도로 조심했고 심심한 요리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영향일까? 이 시기에 심한 저혈압 현상을 겪었다. 사실 간장, 된장, 고추장, 식초, 후추, 소금 등 간을 내는 재료들의 맛을 알지 못했다. 영화 '라따뚜이'의 생쥐 요리사가 재료의 맛을 상상하며 어우러지게 하여 멋진 음식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놀라움 자체였다.

'아, 요리의 맛을 상상할 수 있는 거구나.'

착한 남편은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줬다. 심심하니 그냥 익힌 음식을 먹었다. 이런 남편 덕일까?

요리가 심지어 좋았다. 익히면 재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요리는 내가 좋아하는 매우 창조적인 일 중에 하나였다. 주방 앞에 서면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문제는 재료의 맛을 알지 못해서 벌어졌다. 콩나물국에 식초를 왕창 넣는다든지, 고추장을 몇 숟가락이고 퍼 넣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상태의 음식이 완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고집했다. 난 퓨전을 추구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착한 남편은 오랜 시간 참아주다가

"이제 퓨전 그만해. 레시피 대로 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 진심은 창조적 행위에 경고등을 켜게 했고 요리책을 사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무슨 재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꼭 요리를 시작하려면 재료 한, 두 개는 없었다. 그 한, 두 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다가 요리를 망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그때도 맛을 잘 몰랐다. 지금이야 이것이 없으면 비슷한 다른 재료로 요리를 완성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웠나 몰라.

결혼 17년 차, 다시 요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초6, 중2, 고1. 사춘기 초기, 중기, 후기 세 아들들 덕분이다. 아이들의 사춘기로 꽤나 오랜 시간 속앓이를 했다. 아이들의 다툼을 보는 것, 대드는 행위를 보는 것,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행태를 보는 것이 모두 숨 막히는 일이었다. 가족 상담을 받아보기도 하고 상담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이런 나에게 들려온 말,

"사춘기 아들한테는 잔소리 말고 따뜻한 요리면 다 된다."

'진짜일까? 믿거나 말거나 한 번 해보지 뭐.'


진리였다. 그들은 단순했다. 정성이 담긴 요리면 다 됐다. 부드럽게 와서 말을 걸었고 더 달라고 하고 뚝딱 먹어 치웠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다.


사춘기 아들 때문에 고민이십니까?

닥치고,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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