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이어트 역사
‘1년 365일 다이어트’ 나의 대학 시절 별명이다. 공강 시간에는 헬스장에 가서 헬스 파워를 자랑했다. 허리가 아파서 동작은 어설퍼도 요가도 꾸준히 했다.
어릴 때부터 통통했던 나는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었다. 두 살 위인 언니의 별명은 삐삐, 나는 찐빵. 남들은 자매끼리면 옷을 같이 입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했지만 한 번도 옷을 공유할 수 없었다. 중 2 때부터 나는 언니의 몸무게를 따라먹었고 째쟁이 언니는 인형 옷 같이 딱 붙는 옷만 줄창 사댔다. 그림의 떡이었다. 어린 시절 처음 치마를 입었던 때가 생각난다. 부모님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하얀 블라우스와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사주셨다. 그걸 입고 집 앞 화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무슨 치마 산 기념으로 사진인가 싶은데 나는 삐삐 언니의 예쁜 옷을 물려받지 못하고 오빠의 털털한 옷을 물려 입었다. 사진을 보면서 투덜대니 엄마는
“너는 치마가 안 어울렸어. 오빠 바지가 딱이었어.”
하는데 여자로서의 존재를 거부당한 느낌이랄까?
‘나도 예뻐지고 말겠어. 나도 여자처럼 입고 말 거야.’
그 후로 쭉 1년 365일 다이어트가 시작됐지만 넘치는 식욕 앞에 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재수 시절에는 책상에 앉아서 잘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 시절의 내 볼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꽉 끼는 바지는 늘 불편했다. 대학에 올라가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다짐하며 오후 3시 이후에 물도 안 마시는 극한 다이어트를 했다. 몇 달 만에 시골집 읍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엄마와 언니가 나를 못 알아볼 정도였다.
삐삐 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힘이 하나도 없이 다니면서
“괜찮아. 나 배 하나도 안 고파.”
만 하고 다녔단다.
다이어트가 성공하긴 했는데 몸이 아파왔다. 먹을 수 있을 때 몽땅 먹고 쫄쫄 굶기를 반복해서 위가 상했다. 지금도 약한 위로 고생하며 그때의 무지함을 후회한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허했는지.. 대학교 옆 피순대 집에서 피순대를 사서 먹고 콘프레이크에 우유 1000ml를 다 먹어도 허기졌다.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몸은 다시 원상태를 찾아갔다.
스물아홉에 결혼해서 내리 2년 터울로 아들 셋을 낳았다. 그들은 나를 말려갔다. 그때는 모성애가 진했던 터라 아이들이 뛰어다닐 때까지 셋 다 모유 수유를 했다. 잠 한번 푹 못 잤다. 양쪽에 한 명씩 눕히고 막내는 내 배 위에서 잠을 잤다.
자려고 누우면 내 속에서
“하~”
하루 막노동을 마친 자의 깊은숨이 나왔다.
오랫동안 못 본 사람들은 내가 어디 크게 아픈 줄 알았다. 살이 쪽쪽 빠졌고 얼굴이 희멀건해서 돌아다녔다.
내가 30여 년, 1년 365일을 노력해도 안되던 다이어트를 단박에, 확실하게, 저절로 이뤄낸 고마운(?) 세 녀석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이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