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에 대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오빠, 언니를 따라서 부지런히 무언가를 끄적이곤 했다.
나는 좀처럼 ‘나의 것’을 차지하기 힘들었던 사 남매 중 셋째였다. 그런 내가 곰돌이 인형을 생일선물로 받는 아련하면서도 선명한 일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밝고 따스한 봄볕에 팔랑팔랑 춤추는 기분이 떠오른다. 3월에 나에게 온 곰돌이 인형에게 ‘삼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나의 첫 공식적인 글쓰기이다.
오빠 사회책을 가져와서 글자를 따라 그려보기는 했다. 색연필로 쓰고 닦는 비닐 한글판을 주구장창 따라 써보기는 했다. 그래도 글쓰기는 처음이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떠듬떠듬 삼삼이의 반짝이는 눈과 코, 포근한 털을 찬양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삼삼이를 선물 받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가슴 벅찼다. 내가 이런 글을 쓰다니!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에게 서둘러 나의 첫 글쓰기 작품을 보여주었다.
“언니! 이거 내가 쓴 거야!”
나 자신도 믿기지 않게 놀랍다는 표정으로 언니가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잠시 뒤, 돌아온 한 마디.
“이게 무슨 글이냐?”
이 한 마디 남기고 언니는 포르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의 절망감이란...쓴 글은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지고 남은 나는 삼삼이를 안고 울며 잠들었다. 살면서 얼마나 이때를 원망했던가. 언니가 이때, “와~! 잘 썼네.”는 아니어도 “이게 무슨 글이냐?”만 안 했어도 글 쓰는 것을 그리 무서워하며 살지는 않았을 거다. 오랜 시간 글쓰기 앞에 얼어있었다. 누군가 와서 ‘이게 무슨 글이냐?’ 할까 봐 깊은 동굴 속에 터를 잡고 조심히 끄적일 뿐이었다.
아빠 덕분에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일기를 썼다. 글자를 잘 모르던 때에는 하루 지낸 일을 테이프에 녹음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 유치원 다닐 때 쓴 그림일기에는 빈틈없이 그림을 그리고 글자를 꾹꾹 눌러썼다, 초등학교 때 꾸준히 일기를 써서 방학 과제 상을 받기도 했다. 선생님이 글 밑에 적어주신 한 줄을 보고 또 봤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가고 사춘기 시기에는 일기 검사가 불편하기 시작했다. 일기를 함부로 봐도 되는 거냐, 일기는 나만을 위해 쓰고 싶다! 오랜 시간 투쟁을 해서 중고등학교 때는 한 달에 한 번 아빠에게 편지 쓰는 것으로 대체가 되었다. 안 쓰면 되지 싶다가도 치사하게 이걸 안 쓰면 한 달 용돈이 날아가는 상황이었다. ‘반강제 글쓰기’ 시기를 거의 10여 년 보냈다. 구차하게 용돈을 구하자고 쓴 편지였다. 꽤나 날선 언어들이었을텐데 그 편지를 아빠는 지금도 보물처럼 가지고 계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덜컥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가 싸주신 김밥과 친구와의 우정을 담은 내용이었다. 사실 허구를 약간 섞어서 아름답게 마무리 지은 것이 상을 받은 것이다. 거짓말하다가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누군가 ‘너 진짜 이런 일 있었어?’ 물어볼까 싶어 애써 눈을 피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교묘히 뒤섞여 있다.
울렁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유난히 좋아했던 한 친구에게 썼던 편지, 속이 답답할 때 풀어놓았던 가끔의 일기,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꽃피운 재수 때 보낸 러브레터... 군대 간 그 친구에게 전력을 다해 수백 통을 썼던 터라 헤어질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이바이 했다. 그 수많은 편지들은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나의 글쓰기는 아이를 낳고 또다시 꽃 피웠다. 세 아이를 키우며 늘 이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너무 행복한 순간이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나의 오래된 습성 때문이다. 아이들이 내 비좁은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려고 할 때, 마음 다해 보내주어야지,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살아내야지 다짐했다. 아이의 말 토씨 하나를 기억해서 기록했고 육아의 힘듦을 이것으로 풀었다. 수많은 일촌들과 미니미를 남겨두고 문 닫는다는 싸이월드를 떠나 왔다. 카카오스토리에 자리를 잡고 사진과 글을 남겼다. 사람들의 반응이 쫙~달리니 신이 나서 썼다. 누군가 내 글을 허락 없이 자기 글인 것처럼 옮겨갔고 곧 광고글이 많아졌다. 내 글도 광고같이 느껴져서 다시 짐을 싸들고 블로그로 이사했다. 블로그에는 그곳에서 환영하는 문체, 구성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어리둥절해하다가 내 스타일대로 글을 남겼다. 메아리 없는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이곳, 저곳에 글을 흘려가며 이곳까지 왔다. 글쓰기를 배운 적 없어 늘 부끄럽기만 했다. 그래도 힘들면 어김없이 내 이야기 몽땅 짊어지고 와서 풀어놓아야 정신이 차려졌다. 억울해서 오고, 외로워서 오고, 힘주고 싶을 때 오고 작은 것을 기억하고 싶을 때 오고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를 때 왔다. 글 속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맺혔던 것이 풀어졌다. 일상의 작은 것을 모아 기록하며 놀았다. 너무도 작아서 쉽게 잊혀지고 사라질 것들을 글 안에 붙잡아놓는 재미가 있었다. 글 속의 이야기는 크고 굵직한 것보다 작고 희미한 것을 잡아 쓸 때 신나서 더 살아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롱 맨 위칸에 어릴 적 쓴 일기장을 열며 그 시절 나를 만난다. 아빠가 담배 피워서 힘든 이야기, 동생이 기특해서 쓴 이야기, 자고 일어났는데 가족이 없어서 당황한 이야기, 감 딴 이야기, 감 판 이야기, 개울가 물고기랑 새우 잡아 김치 넣고 끓여 먹은 이야기, 어린이날 짜장면 먹은 이야기, 시험 보고 운 이야기, 마당에 불 피워서 구운 보리를 손이 까매지도록 비비고 불어서 오동통한 그것을 오물오물 씹어 삼킨 이야기... 어린 시절의 내가 다시 다 살아났다. 그 시절의 내가 귀여워 안아주었다가 안쓰러워 달래기도 한다. 어리지만 단단했던 생각들에 놀라기도 하면서. 지금 나의 이야기는 먼 훗날 뭐라고 말을 걸어올까?
힘들면 힘들다, 좋으면 좋다, 하늘이 주신 만남이었다가 죽일 놈이 되어 버리는 번덕쟁이 나다. 친구랑 싸우고 온 날이면 "나 이제 절대 경희랑 안 놀아." 해놓고 그다음 날이면 우리 집에 경희를 데려와 놀곤 했다. "너 절대 안 논다며?" 하던 얄미운 언니에게 "내가 언제~"하고는 신나게 놀았다. 글쓰기는 널뛰기하는 내 마음이 하나의 선을 긋도록 도와줬다. 속으로 죽어라 욕하는 마음을 공책에 토해놓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입장을 더듬거렸다.
글쓰기에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 내 마음뿐만 아니라 너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는 힘, 내 말에 뭐라고 토 달지 않고 지껄이는 말을 모두 보듬는 힘, 스스로 정신 차리고 일어날 때까지 넉넉히 기다려 주는 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하는 힘, 그래서 미래를 그려보게 하는 힘... 그 힘에 이끌리어 이렇게 써왔고 쓰고 써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