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웃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요란한 쪽보다는 잔잔한 쪽, 아니 어느 때는 무심한 쪽에 가까웠다. 교회의 시끄러움보다는 천주교의 잔잔함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우리들 앞에서 휴지로 김치 찢어먹는 포즈를 취하던 한 장면은 쇼킹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정갈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 들어가는 그녀에게 인사 오는 사촌 오빠들은
“작은 엄마는 늘 한결같아요.”
라는 소리를 하곤 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늘 깨끗했다. 그 반질반질하던 곳에 햇볕이 반짝일 때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 평안이 밀려왔다. 그녀는 소리 없이 억척스러웠다. 연년생으로 아들, 딸을 낳고 2년 쉬었다가 다시 연년생으로 딸, 아들을 낳았다. 아들딸딸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며 키우셨다. 우리의 어린 시절 서외리 148번지에 살았을 때, 방보다 낮은 곳에 부엌이 있었다. 물을 데워와서 방 안에 큰 다라이 통에 붓고 쫄망쫄망 어린것 넷을 박박도 씻기셨다. 때가 둥둥 떠다니고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때 우리도 반질반질, 반짝거렸다.
얼마 전 그녀를 만나러 갔다. 나와 비슷했던 키는 더 작아졌고 등은 낮은 언덕처럼 굽었다. 겁이 많아서 오른쪽 무릎 수술을 자꾸 미루는 그녀는 걸음걸이도 예전 같지 않았다. 여전히 농사일로 바빠서 긴 장화에, 엉덩이 방석을 거북이 등딱지마냥 양다리에 끼고 밀짚모자를 하고 있었다. 마늘밭에서 한 구멍에 2~3개씩 나온 것을 한 개만 남기고 솎아야 한 개가 제대로 굵어진다고 했다. 그 솎은 것을 다듬어 무게를 재어 내다 팔았다.
나는 이곳에 오면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지. 내 집에서도 잘 수 없는 꿀잠을 이곳에서는 잤다. 차려진 밥상에서 밥 먹고 숟가락 놓으면 솔솔 잠이 왔다. 먹고 자서 띵띵 부은 얼굴을 느끼며 일어나서 주섬주섬 챙겨주신 쌀, 고구마, 김치, 도토리묵, 반찬, 냉동 마늘, 데쳐서 얼려놓은 나물, 들기름 등을 받아서 오곤 했다. 이번엔 다짐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는데 잠만 자고 오지는 말자. 그래서 그녀 옆에 앉아서 마늘 줄기를 다듬었다. 내가 옆에 앉으니 신이 나셨는지 마늘밭 남은 부분을 더 솎아내자고 하신다. 마저 다 솎아내고 다시 한참을 다듬었다.
점심을 차리러 그녀가 들어가고 주위를 둘러보니 부서진 의자, 깨진 그릇, 구겨진 캔, 구멍 난 유리병 등 지저분한 것들 천지였다. 주워오기 좋아하는 아빠와의 전투에서 지기로 작정을 하신 것 같았다. 평생을 싸웠는데 아빠의 수집력에 엄마는 완벽한 KO패를 당했다고 봐야 했다.
그 반들반들했던 그녀의 공간은 어디 가고 이제는 만사가 귀찮다며 쌓아놓고 버려두었다. 심지어 감추어두지도 않았다. 다짐을 하고 온 판이라 큰 파란색 봉투 4개를 가져와서 분리해서 담아 내 차에 실었다. 감춰야 할 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모아놨다. 그것이 미안했는지 방 안에서 어여 들어와서 밥 먹으라는 소리만 자꾸 들린다.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읽으며 그 속의 엄마가 우리 엄마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기어코 모든 것을 빨아버리는 우리 엄마,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림책 속 엄마는 우리 엄마와 생김새까지 닮았다. 우리 엄마의 손길만 거쳐가면 반들반들, 없던 게 생겨났었다. 쫄망쫄망 우리 넷의 양말, 장갑, 조끼도 뚝딱뚝딱이었다. 입혔다 작아지면 풀어서 새로운 사이즈로 만들어내곤 했었다. 동네에서 요리 강습이 있고 나서 집에 들인 네모난 후라이팬에서는 폭신한 카스테라가 오래도록 자주 부풀었다 사라졌다. 동네 아이들 모아놓고 만들어 주셨던 감자 크로켓은 근사하게 느끼한 맛이었다. 그 시절 엄마의 손에서는 천지창조와 같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곤 했었다.
아직까지도 그 놀라움을 담고 있는 곳, 엄마의 밥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풍성하다. 온갖 장아찌에 김치, 생선, 고기, 직접 키운 더덕으로 한 구이, 뒤뜰에서 자란 닭들이 낳아준 유정란으로 만든 달걀찜... 나를 살아나게 하는 이 밥상... 언젠가 이 밥상마저 귀찮다고 하실 때, 오늘의 엄마를 그리워하겠지.
그래서 엄마는 보고 있어도 언제나 그리운 사람 1순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