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이 반짝

내 가족을 소개합니다.

by 찐빵

어렸을 때 줄에 묶이지 않은 개를 골목길에서 종종 만났다. 그때의 긴장,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엄마의 콩나물, 두부 심부름 길에 만났던 개. 그들을 피하기 위해 죽어라 뛰기도 하고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으며 눈을 안 맞추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들의 작은 움직임을 살짝살짝 곁눈질하며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나는 너보다 강하다. 강하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행동, 축축한 침, 누릿한 냄새, 날카로운 이빨, 그보다 더 싸납게 짖어대는 소리... 오감 모두를 작동하여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크기와는 상관없었다. 크거나 작거나 그들은 이 무기를 다 장착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동물과는 친해질 수 없다고 어린 나이에 생각했다. 복실이, 삼순이, 팔복이, 그 외에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개들이 늘 우리 집에 있었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존재였다. 안전하게 묶여있었고 그 반경을 피해 다니면 그만이었다.


동생네 집에서 데려온 푸들 동이를 세 달간 키운 적이 있다. 매일 나를 닦달하는 아들들 때문에 잠시 애완견 키우기 체험부터 해보기로 했다. 동이는 내 차도, 우리 집도 난리법석으로 만들었다. 동이를 감당하기에 나는 완전 초짜였다. 내 아이를 키울 때와는 또 다른 공부와 에너지가 필요했다. 퇴근 시간이 남편보다 빨랐지만 마당에 차를 세워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저 집은 내 집이 아니야. 개집이지."

'그래, 우리는 안 되겠다. 아들 셋 키우기도 버거운데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지.'

동이는 다시 동생 집으로 갔고 아들들도 당분간은 조르지 못했다.

의무만 있었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시골 2층 집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의 학교가 바로 코앞이 되었고 하교 시간도 빨라졌다. 혼자 있게 된 시간이 길어지자 다시 세 아들이 졸라댔다.

"저희가 목욕도 시키고 똥도 치우고 산책도 다 시킬게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그때 우리 집에 오게 된 아이가 햇님이다. 젊었을 적 가뭄 들었던 남자 복이 한꺼번에 터졌을까. 햇님이는 말티즈 수컷이었다. 햇님이라는 이름은 전 주인이 붙여준 이름이다. 햇님이가 아기 때부터 썼던 물건을 다 싸서 같이 보냈다.

"햇님아!"

라고 부르자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배냇털 뽀송뽀송한 그 아이를 우리도 햇님이로 부르기로 했다.

병원에 처음 갔을 때

"아가 이름이 뭐지요? "

"네? 아가요? 아, 햇님이요, 햇님이"

그렇게 햇님이 엄마가 됐다.



햇님이는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통통 튀는 비엔나소시지처럼 환대했다. 앞발을 하늘로 쳐들고 서서 꼬리로 날아오를 것처럼 사정없이. 사춘기 아들들이 귀에 에어팟 하나씩 꽂고 자기 방에 칸칸이 들어가 있을 때 우리의 쓰린 마음을 다독였다. 씻을 때, 화장실에서 일 볼 때 매트에 앉아서 기다렸다. 혼나도 삐지지 않았다. 새벽에 책을 읽고 있으면 살포시 내 발 옆을 지켰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파고들어 내 팔에 머리를 대고 같이 누웠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의 바르게 앉아서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리가 없는 낮에 외로워하며 우리를 기다리면 어쩌지 걱정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아들 공개수업을 보기 위해 낮에 집에 잠시 들른 적이 있다. 햇님이는 침대에 누워 고개를 살짝 들더니 세상 모르는 단잠에 다시 빠져들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지금은 애교 서비스 시간 아닌데 "

하는 것 마냥.

네 살이 되더니 말도 잘 알아듣는다.

"갈까? "

하면 문 앞에 뛰어가 펄쩍펄쩍 뛴다. 곧 '가나다라', '안녕하세요' 정도의 말은 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를 자신의 전용 마사지사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쓰다듬으라고 머리를 내 손에 들이민다.

우리는 서로를 기꺼이 받아주는 사이이다. 아프면 안타까워 병원에 가고 캠핑장은 반려견 동반인 곳으로만 간다. 메마른 사춘기 아들 안에서도 사랑의 표현을 뽑아낼 수 있는 놀라운 아이, 내 사랑의 영역을 넓혀준 이 아이는 우리 가족이다.

햇님이 반짝, 오래도록 반짝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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