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 대 생명체
초등학교 5학년때의 기억.
아빠랑 같이 갔던 낚시터에서의 일이다.
낚시의 즐거움을 모르는 초등학생인 나에겐 낚시터는 불장난, 돌로댐 쌓기, 막대기칼싸움, 숲 속모험의 장이다.
나는 낚시라는 어른들의 놀이에는 관심이 없었고 한두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몇 시간이 흘러 나 홀로 모험이 모두 끝나면 멍 때리기가 시작된다.
판자로 지어진 것 같은 허름한 매점 앞 평상옆에 묶여있는 누런색 진돗개를 닮은 개.
힘없이 엎어져 있는 더러운 개를 난 멀리서 쳐다본다.
이유는 없다.
엎드려 꿈틀꿈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그 개를 쳐보다며 공상에 빠진다. 끝도 없는 이 우주에 태어나 꿈틀대고 있는 생명체 대 생명체.
낚시꾼들이 지나갈 때마다 꼬리 치며 반가워하지만 묶여 있는 더러운 개에 눈길을 주는 낚시꾼들은 단 한 명도 없다.
다시 엎드려 목에 달린 손가락만한 쇠사슬에 방금 묻은 진흙을 깨끗이 핥는다.
언제부터 묶여 있었는지 이제 묶여 있다는 불편함 보다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한 몸인 듯 거기 묻은 진흙이 더 불편한가 보다.
누가 너보다 잘나서 묶어 놓았는지 그래도 되는지.
아빠가 짐을 챙기는 동안 나는 몰래 그 생명체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