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것들
두 달 전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등굣길이 너무 멀어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가까운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다.
80년대 중반 초등학교 때 낚시광이었던 아빠와 함께 매주 낚시터로 가던 길에 있던 알록달록한 동네..
매일 지날 때마다 호기심이 있던 동네였는데 내가 그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아직 80년대의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동네 정말 조용한 동네다.
이사 온 날 온 동네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편의점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 브랜드들이 이 동네를 가만히 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마을을 한 30분 돌았을 무렵 가게를 찾았다. 편의점 이전 시절 슈퍼마켓 아니 더 옛날의 동네 구멍가게가 맞을 거다.
정말 어느 정도 타임머신을 탑승한 체 과거로 날아온 것과 같은 느낌.
가게 앞에서 멀뚱이 서 현금이 있나 확인한다. 신용카드는 분명 사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카드단말기가 있다 해도 카드를 내밀순 없을 것 같다.
미닫이 방식의 슬라이딩 도어가 당연한 듯, 스르륵 열고 가게 안으로 발을 넣었다.
다리를 뻗고 앉아서 TV를 보고 계시는 주인 할머니의 모습이 어릴 적 옆집 가게에 온 것 같아 나에게는 너무 익숙했다..
"안녕하세요? 쓰레기봉투가 있나요?"
할머니는 느릿느릿 쓰레기봉투가 있는 선반으로 몸을 움직인다. 엄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쓰레기봉투를 세고 계신 동안 나는 가게 안을 찬찬히 구경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만 허락한다면 무엇이든 사서 나가리라.
이 가게의 주력상품인 듯 가지런히 놓여 있는 스팸통조림, 그리고 몇 가지의 과자, 라면, 어느 순간 잊고 살았던 꽁치 통조림등 종류는 많지 않지만 대형마트의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런 물건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가격이 궁금하다면 할머니에게 물어보라
유일하게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1.5리터 사이다와 콜라.
"콜라도 큰 거 한 개만 주세요"
사실 나는 제로콜라만 마시지만 물어볼 수 없었고 펩시콜라가 있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3500원인데"
3500원이 있냐는 듯한 말투로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3500원이 있다는 듯한 말투로 할머니께 말했다.
"네, 주세요"
나는 자신 있게 현금을 꺼냈고, 쓰레기봉투와 콜라를 들고 나왔다.
거스름돈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 800원과 함께.
다음에 현금을 사용할 일이 또 언제 있을지는 모르겠다.
짤랑거리는 800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 않을걸 알기에 사용할 일 도 없을 거다.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지갑도 들고 다니지 않는 나에겐 거스름돈을 편하지 않은 물건이다.
가상화폐 거래를 하다 보면 다른 화폐로 스왑 되지 않는 남은 작은 단위의 화폐들과 비슷한 것일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버려지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