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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Aug 17. 2021

2008년 1월, 독일행

2008년 1월, 독일행


2008년 1월 17일 저녁, 독일로 향하는 대한항공 비행기 안. 내가 선호하는 비상구 자리. 문법 외에는 독일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던 나는 여행가방 하나와 독일 지도 하나만을 챙기고 무작정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한국만 아니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을 가자니 너무 비쌌고, 동남아는 너무 덥고. 유럽 중에서도 내가 그나마 언어면에서 경험이 있던 독일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2~3년 정도 버티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되겠지 하고 떠났다. 12년이라는 세월을 유럽에서, 그것도 오스트리아에서 보낼 줄 누가 알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부끄럽지만, 처음 독일 땅을 밟을 때만 해도 오스트리아가 독일어를 쓰는 줄 몰랐다. 나에게는 한국을 떠날 만큼, 한국을 당분간이라도 잊을 만큼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다. 인천 국제공항의 활주로에서 벗어나던 비행기 안에서 독하게 마음을 먹으며 다짐했다.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던 나게는 유학 자체가 파격적인 결심이었기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때에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 혼자구나'가 아닌, '드디어 혼자여서 다행이다'가 먼저 떠올랐다. 완전히 타지에서 적응하는 데까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뭐든 혼자 처음 시작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고, 안팎으로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어설픈 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 새롭게 시작하려면 무조건 앞만 보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전진할 수 있다. 시작은 불안하더라도. 2008년 1월 유럽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꽤나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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