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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May 08. 2022

맛집 리뷰 아닙니다

추억이 기억을 지배할 때

맛집 리뷰 아닙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곳을 떠나게 되면 가끔씩은 그곳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나의 경우는 유럽이다. 내 나이 20대 후반에 나가서 30대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약 10년이라는 시간. 언어가 전혀 되지 않을 때부터 해서 비자청에서 나의 의견을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싸움닭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냈으니 적지 않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확하게는 12년이라는 세월이지만, 어디 가서는 누군가 나에게 물어보면 10년이라고 답한다.

성격 때문인지 5의 배수를 좋아한다. 왠지 안정적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살면서 좋은 기억도 물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억들도 있다.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비슷하지 않나 싶다.

오랫동안 지속된 타지 생활에 비해 한국으로의 귀국은 정말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지난날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한국에서의 삶은 정말 정신없이 돌아갔다.


살았던 동네, 다녔던 학교, 알고 지냈던 지인들, 즐겨 먹었던 음식, 자주 방문한 식당과 카페.

10년 동안 살아온 동네를 추억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돌아와서는 한국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크게 없었고, 지난 나의 타지 생활은 이렇게 잊혀 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벌써 만으로 3년이 흘렀다.

조금씩 삶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예전에 먹었던 현지 음식이 가끔씩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은, 한국에는 전 세계 음식을 맛볼 수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해외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을 찾아볼 수가 있다.


유학을 나가기 전에 이태원 음식점 탐방을 간 적이 있다. 아마도 2006년도였던 것 같다.

당시 그곳은 없는 음식점이 없을 정도였다. 중국음식, 인도음식, 독일 음식, 터키 음식, 태국 음식, 아랍 음식 등 다양하게 있었다. 케밥이 먹고 싶을 때면 이태원을 들렀고, 인도 카레나 탄두리가 먹고 싶을 때면 이태원을 가면 되는 거였다. 한 번은 독일 맥주가 맛있다길래 어머니와 형과 함께 독일 맥주집에 가서 맥주 한잔과 함께 나름 독일식 족발이라고 하는 슈바인스학세 | Schweinshaxe를 시켜먹었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간은 되어있지 않았고 그냥 느끼했다. 한참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독일 현지에서 학세를 먹어 봤을 땐, 이전에 방문했던 독일 음식점이 뭔가 잘못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현지 음식이 맛있었다는 소리다.


이태원의 방문은 유학 전의 이야기고, 한국에 돌아온 지 만 3년째가 되니 타지에서 즐겨먹던 음식을 아내와 함께 가끔씩 추억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오랜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살았다. 여러 현지 음식을 경험했지만 특히 그곳의 현지 음식과 빵을 즐겨 먹었다. 커피는 물론이고. 인터넷을 검색하던 도중 오스트리아 현지인이 운영한다는 카페 겸 빵집을 발견했다. SNS가 워낙에 발달한 요즘, 이곳에 대한 정보는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메뉴판과 사진만으로 봤을 땐 없는 게 없었다. 우리가 즐겨먹던 카이저젬멜 | Kaisersemmel 빵을 활용한 샌드위치, 자허토르테 | Sachertorte, 아펠슈트르델 | Apfelstrudel. 심지어 내가 즐겨먹던 현지 가공육인 레버케제 | Leberkäse를 활용한 샌드위치도 메뉴에 있었다.


커피 메뉴는 더 기대 이상이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맛볼 수 있다는 멜랑쥐 | Melange, 그리고 이제국내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는 현지 맛의 아인슈페너 | Einspänner.


우리는 오랜 고민 끝에 시간을 내어 이곳을 찾아갔다.

기대와는 다르게 온라인 SNS를 통해서 먹고 싶었던 대부분의 메뉴는 가능한 게 없었다. 진한 초콜릿 베이스에 살구잼이 들어간 케이크에 휘핑크림과 함께 곁들여 먹을 때면 진한 에스프레소와의 환상적인 조합을 자랑하는 자허토르테는 흔적도 없었고 (오전에 일찍 갔음에도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던 레버케제는 현지에서 더 이상 공급을 해오지 않아서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애플파이의 끝판왕이라고 나름 생각했던 아펠슈트르델 또한 그날뿐이었는지 판매되지 않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진열되어 있던 샌드위치 두 개를 시키고 아내는 멜랑지 커피를, 나는 아인슈페너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간단하게 햄과 토마토, 그리고 상추가 들어간 카이저젬멜 샌드위치를, 나는 아보카도와 햄이 듬뿍 들어간 라우겐 크상을 메뉴판에서 선택했다.


카이저젬멜 | Kaisersemmel 샌드위치
아보카도와 햄이 들어간 라우겐 크롸상 | Laugencroissant 롸


메뉴를 받은 우리는 재료의 신선함에 놀랐다. 음식 맛도 괜찮았다.


샌드위치를 맛보며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오스트리아 현지의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들어온 가계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 최적화된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너무 맛을 냈다. 내가 원하던 맛은 무조건 맛있는 그 맛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닌, 그냥 맛을 잘 낸 그 느낌이었다. 많은 것을 바랐던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어떤 맛 | taste로 인하여 추억의 잔상이 잠시 동안만이라도 눈앞에 아른거리길 바랄 뿐이었다.


결코 맛이 없진 않았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이의 정성이 충분히 느껴지는 맛이었다.

오스트리아 현지인이 운영하는 가계라고 들었지만 주인 입장에서는 외국인(여기서는 한국사람)의 입맛에 맞췄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오스트리아에서도 찾아보면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를 수 있는 그움이었다.


커피는... 추억이고 뭐고 없었다.

국내에서 마실 수 있는 흔한 맛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리 나의 촉각을 곤두세워도, 지난 10년간 맛본 그곳에서의 커피에 대한 데이터를 나의 세포 속에서 아무리 뒤져 보아도 오스트리아의 그 맛과 단 1%도 유사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기했다. 타지에서의 현지 맛을 몇 번이고 경험해봤기 때문에 나의 미각을 자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은 가능성에서 잠시라도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문득 그때의 그 맛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지 귀국 후 한국에서의 한국인 입맛으로 너무 빨리 적응한 나머지 그때의 맛에 대한 기억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너무나도 그리워한 마음에 기대가 컸었는지 그만큼 실망도 만만치 않았다.


타지에서의 생활은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단맛, 짠맛, 쓴맛 모두 존재하는 삶이었다. 지난날을 떠올릴 때면 적어도 지난 10년간의 기억은 머릿속에 그렇게 정리되어 나에게 말하고 있다.


이전에 경험해본 음식이라 할지라도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어떤 기분으로 먹었느냐에 따라 맛에 관한 기억이 다 다르다. 추운 겨울 새벽 먹을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군대에서 새벽 근무를 마치고 끓여먹었던 라면, 그 국물의 맛은 사회에 나와서 웬만해서는 절대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복무 중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은 배식되었던 카레가 지겨워 제대 후에는 한동안 카레에 입에도 대지 않았다.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특별한 기억이 내재되어 있는 음식을 통해서 소환되는 추억은 가끔은, 혹은 대부분 실망감으로 나를 다시 반기기도 한다. 그때의 순간이 나에게 그만큼 의미가 컸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맛이라면 이런 얘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입맛은 한국에서 이미 적응해버린 지 오래다. 머릿속으로는 기억한다고 해도 타지에서의 기억을 잊기에 한국은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이 넘쳐난다. 이곳에서도 나는 매일같이 단맛, 짠맛, 쓴맛에 익숙해져 간다.


맛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이면 다시 또 맛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되살릴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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