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igantes Yang
Apr 20. 2022
I see!
나는 매일 아침마다 출근해야 하는 봉급쟁이는 아니다.
아침마다 대부분이 가기 싫어하는 사무실에 나갈 일은 없다.
월요일 아침부터 나를 갈구려고 대기하고 있는 선임도,
평소엔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 주말만 되면 굳이 나를 생각해주는 부장님도 없다. 주말이 빨리 끝나기를 모두가 바란다는 월요 회의도 없다.
나는 음악가이자 대학교에서 음악 관련 수업을 하는 강사다.
아침에 6시면 대부분 눈을 뜨게 된다. 4시에 깨야할 때도 있지만 몇 시에 일어나든 상관없이 잠과의 사투는 여전히 계속된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다.
일주일에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대략 오전 7시면 집을 나선다. 7시와 8시 사이의 지하철은 정말 지옥이다.
한 번은 7시 15분에 지하철에 탔더니 사람이 좀 많더라. 그래서 선택한 7시 30분대의 지하철. 더 혼잡했다. 이번엔 조금 일찍 타볼까 해서 평소보다 집에서 일찍 나와 7시 전후로 지하철을 탔다. 역시나 의미 없는 짓이었다. 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탄다.
유독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정거장이 있다.
환승역은 시간대 상관없이 대부분 혼잡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신도림행 혹은 수원행의 1호선이다.
영화의 오랜 소재거리로 사용되는 요소 중 내가 좋아하는 건 다중 세계 | Multi Universe에 관한 이야기다.
다중 세계를 믿는 건 아니지만 평소에도 상상하는 걸 즐긴다.
다른 세계관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긴, 여전히 똑같겠지.
뭐 아무튼,
이른 아침의 1호선은 나에게 있어서 다중 세계와도 같다. 지하철이 곧 도착한다는 반갑지 않은 안내방송에 이어서 지하철 문이 열리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의 경계를 넘어가는 많은 이들이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맞이한다. 자리도 좁아 죽겠는데 내리는 사람은 없고 또 탄다는 표정이다.
환승역에는 처음으로 두 세계 간의 대립이 벌어진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자들과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는 자들과의 의미 없는 몸싸움이 시작된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시작된다. 누가 먼저 시작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일단 내리기 시작하고 일단 타기 시작한다. 몸부터 움직이지 않는다. 그 누군가로부터의 첫 발이 다른 세계로 내딛게 되면 몸싸움은 비로소 바로 시작된다.
한국이 전투의 민족이었던가. 연령, 성별,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가 이 전투에 지원한다. 시간대가 이를수록, 혹은 늦을수록 모두가 한 몸이 되어 더욱더 투철해진다.
지하철 안의 세계관과 정거장에서의 세계관에서 활약이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최전방의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수색대와도 같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세계관 진입을 노리는 후방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 덕분에 전투는 치열해진다. 후방의 예상치 못한 전우들의 진입에 겁 없이 최전방에 서있다가는 서로 다른 세계관의 진입을 막는 효과를 만들게 됨으로써 서로 간의 대립을 더 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덩치가 큰 나는 대부분 이러한 의미 없는 전투가 끝나고 진입하는 걸 선호한다. 서로의 세계관의 부딪힘이 끝나지 않은 채 문이 닫힐 것 같으면 다음 세계관 진입을 노리기 위해 후발 열차를 기다리곤 한다.
이른 아침에는 모두가 예민하다. 제아무리 아침형 인간이라 할지라도 꼭두새벽부터 모르는 사람과 몸을 맞대고 싶을 사람 누가 있겠는가. 서로가 마찬가지일 거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순간까지도 잠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내가 서있는 공간이 현실이 아닐 거라 부정하며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환승역에서 유독 많은 몸과의 거친 스침이 존재한다. 내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내리고 타지. 승차하는 입장에서는 좀 타고 내리지. 서로가 자신만의 다양한 사연과 핑계를 갖고 먼저 움직인다. 목적지에 늦었기 때문에. 때로는 남들보다 먼저 빈자리에 앉기 위해.
출입문이 열리면 시작되는 사투. 그리고 시작되는 회화 시간.
"I see."
우리는 심봉사의 후예였던가. 모두가 눈이 떠지는 기적을 보이는 지하철. 다들 뭐 그리 대단한 게 보인다고. 그렇다고 절대 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는다. 아침부터 그럴 힘도 없다. 벌써 출근이라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작은 탄성과도 같다. 물론 반어법이다. 너에 대한 나의 특별한 악감정도 아니다. 어차피 오늘이 가면 기억도 안나는 인연.
나도 오늘도 그렇게 세상을 향해 강제로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