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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Nov 06. 2022

꿈 좀 안 꾸고 단 한 번이라도 푹 잤으면

꿈 좀 안 꾸고 단 한 번이라도 푹 잤으면


물론 내 얘기는 아니다.


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푹 잠드는 나로서는 잘 모르는 상황이지만, 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평소에 걱정이 많고 예민하다는 얘기를 는다고 한다. 눈 감으면 딱 아침이어야 하는데 꿈의 모든 과정을 다 기억하면서 실제로 겪는 듯이 생생하다고 한다.


한 번은 누군지 모를 두 집단이 전쟁을 하더라. 이긴 팀이 진 팀한테 국수를 말아주는 결말이랬다. 실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번 꿈 얘기를 들을 때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대부분 짧은 단편들로 되어있지만 웬만한 판타지 영화보다 재미있다.


스토리도 다양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얘기지, 내 얘기는 아니다.


나도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하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꿈의 내용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누군가 나와서 로또번호라고 알려주면 모를까.


[어느 건물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은파호수공원: 꿈과 현실은 여러 개의 창문을 사이로 공존하고 있는 두 개의 세상이 아닐까]


기억에 남는 꿈이라고 한다면, 하나 있다.


1997년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아는  S의 탈옥 사건. 내가 아직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 그로 인해 무지개 쫄티가 엄청 유행했었다. 그 당시 나도 기념 삼아 그 쫄티가 사고 싶었지만 금세 완판 되는 바람에 기회는 없었다. 탈옥한 범인을 잡으면 당시 상당한 포상금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혈기왕성했건 나로서는 내가 살던 동네에 나타날 리가 없었음에도, 그리고 단 1%의 가능성도 없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밤낮 주변을 예민하게 둘러봤던 것 같다.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독 화창했던 어느 여름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낮잠을 취했다. 그날따라 기분 좋게, 더웠던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잘 자고 있는데 방문 앞의 불청객 때문에 잠이 깨버렸다. S였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자세로 S의 얼굴을 발로 수차례 가격을 했다. 사실 그 정도 맞았으면, 적어도 통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쓰러지던가 기절 정도는 당연할 텐데 아무 느낌도 없는지 같잖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열이 받았던 나는 더 거센 발길질을 해댔다. 이상하게 내 발만 아파오는 게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을 땐 나는 이미 통증에 못 이겨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땐  S는 온데간데없고 침대에 누워 벽을 향해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서도 계속해서 벽을 치고 있었다. 사람도 아닌 벽을 있는 힘껏 치고 있었으니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 꿈에서의 통증은 현실로 돌아온 내게 큰 고통으로 이어졌고,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오른발이 아파서 쩔뚝거렸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S를 잡고 싶었으면 벽을 상대로 싸웠냐며 내 얘기를 들은 가족들은 수시로 이 얘기를 꺼내며 놀려댔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가 꾸는 꿈들은 늘 스토리가 묘하다. 내가 자는 동안 다른 세계의 내가 활동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내가 활동하는 동안 누군가의 꿈속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2를 보고 소름이 돋았을 정도니깐 말이다(영화 스포일을 위해서 영화 얘기는 하지 않겠다. 그냥 대략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나의 일상이 다른 평행세계에서의 또 다른 나의 꿈속 세상이라면, 좀 더 기이한 현실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은 한다. 내 꿈속 내용이 정말로 또 다른 나에게 진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조금은 부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현실은 국립중앙박물관: 꿈이라면 어디로 향하는 계단일까]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꿈에서는 몇 곱절, 때로는 그 이상의 상황이 벌어지는 게 꿈이라는 세상이다(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자면서 꿈을 꿔도 그만이고 꾸지 않아도 그만이다. 꿈속에서의 나는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웅도, 악당도 아니고,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꿈들은 하나같이 다 특이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에 잡생각이 많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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