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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ul 05. 2022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은가


얼마 전에 친구의 큰 형님 부고를 받았다. 대학 동문인 우리는 꽤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매년 묻곤 한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의 몇 번 안 되는 연락이지만 각자 잘 지낸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로의 인연이 탄탄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은 나는 다른 일정을 뒤로하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보는 참 반가운 얼굴들이 이미 자리를 채우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정말 몇 년 만이라 당장에라도 담소를 나누고 싶었지만 웃고 떠들 분위기도 기분도 아니었기에 눈인사만 나눴다. 살아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인연이기 때문에 당장에 나누지 못한 서로의 안부가 아쉽지는 않았다.


친구는 형제들 중 막내이(4형제다). 친구의 부모님은 이전에도 친구의 졸업식 때 한번 뵈었던 기억은 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고, 당신보다 먼저 간 아들이 이제는 옆에 없는데 세상 어느 부모가 른데 신경 쓸 정신이 있겠는가.


이번으로 두 번째 뵙는 친구의 아버님은 이전보다 몸집이 더 작으셨고  많이 연로하신 티가 났다.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슬퍼하실게 분명한데, 애써 웃으시며 나의 두 손을 잡아주시면서 해주신 고맙다는 말씀은 나의 마음을 더 쓰라리게 했다. 이전 뵈었을 때에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도 친구의 아버님의 얼굴을 통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과 겹쳐졌다. 사는 곳도, 성도, 집안도, 게다가 서로 연고도 전혀 없는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불과 몇 초의 시간이었을까, 마스크에 반쯤 가려진 아버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본 기분이었다. 아버지께서 살아 돌아오신 기분이었고, 나중에 집에서 분의 사진을 번갈아 가며 보던 아내도 서로 형제지간이 아니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미 돌아가신지 좀 되었지만, 난 아직도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가 방금 나눈 대화인 듯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비엔나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직은 추운 2월 초.

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친할아버지와 연결을 해주셨다.


"건강히 잘 지내지? 한국에 오면 할애비하고 보자"


잘 지내냐는 말씀과 함께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며 걱정을 해주셨던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할아버지께서는 평소에도 약주를 즐기셨는데, 그날도 약간의 술기운에 손주와의 통화가 기분이 좋으셨는지 통화를 하는 내내 목소리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일주일 뒤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기 전까지는 할아버지와의 통화가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께서는 혹시라도 한국에 잠시 올 수 없겠냐는 말씀을 하셨지만, 갑작스럽게 비행기표를 구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당일 표를 알아보니 가격이 거의 200만 원에 가까운 값이었다. 조금 저렴한 표들은 대부분 5번 이상 경유에 도착이 2~3일은 걸리는 표들 뿐이었다. 결국에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참석을 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께서는 혼자서 장례식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존재는 손주들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라서 큰 별과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누군가의 죽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아내와 아버지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 뒤로 약 1 년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매년 2월 초만 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할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들은 기억으로 떠오를 때마다 쓰라림만 가득했다.


한두해 지나고서 무기력함과 슬픔을 이겨내고자 했던 결심은 생각보다 쉽게 찾아왔다. 평생 가는 인연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언제 헤어질지는 몰라도 '현재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챙겨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자', '자연스레 멀어진 관계에 매달리지 말자'는 생각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에 더 집중하게 해 주었고, 우울증을 이겨내게 되었다.


올해도 여전히 할아버지가 그립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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