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igantes Yang
Aug 17. 2022
토론-ting
나는 말을 하면서 내용에 기승전결이 잘 없다.
상대방에게 말을 하다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결론이 안 날 때가 간혹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급하게 말하다 보면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들은 뒤죽박죽이다. 그러다 보면 했던 말을 또 반복하게 된다. 대화의 미로에 빠져있을 때 상대방은 출구에서부터 나를 찾아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가끔은 뜻도 제대로 모르는 고급 어휘나 표현을 쓰면서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상황에 다다르게 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굉장한 표현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대부분은 운이 좋지 못한 편이다.
변명을 하자면,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어려서 말을 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그게 이유가 된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냥 그렇다고 얘기하고 싶다.
어려서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가족들과 3년 정도 살았다. 굉장히 조용한 동네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넘어간 미국의 첫인상은 나에게 낯섦 이상으로 무서운 나라였다. 첫 등교날 교실에 들어선 나는 눈알이 알록달록한 미국 학생들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반년이나 학교에 가기 싫다고 등교 때나 하교 때나 할 거 없이 울어댔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과 말이 통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막상 한국에 돌아가야 할 무렵에는 돌아가기 싫다고 찡찡거렸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나름 조기교육 덕분인지, 지금도 자막 없이 영어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틀릴 때도 있지만 영어문제도 일종의 감으로 푸는 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었지만 필요할 때마다 문제없이 술술 나왔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의 워밍업을 할 시간이 필요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듣고 이해하는 건 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문제는 회화에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서 완벽한 언어를 구사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너무 어렸을 때 갔던 아이가 무슨 대단한 경험을 했을까 싶다.
3년은 한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엔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구사하는 언어는 불안정한 상태의 초등학교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고, 그 상태에서 한국에서 적응을 해버렸기 때문이지 모국어 조차도 어눌해졌다.
살면서 외국어에 크게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대충이라도 하면 반 이상은 했기 때문에 그대로 지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에 가기 전, 호주의 친구 집에 놀러 갈 기회가 있었다. 친구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지만, 그냥 친구로 지낸다. 도착하고 다음날 만나게 된 친구의 딸과 처음으로 인사를 했고, 언제 호주에 도착했냐는 말을 한 딸에게 나는,
"yesterday night"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다. 순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암만 사투리라 하더라도 호주도 영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나름 어제 도착을 했고, 도착했을 때 호주는 저녁시간이었다는 것을 한 번에 얘기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무엇을 먼저 얘기해야 할지 순번을 정하지 않았던 나의 즉흥적인 대답이었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정확한 표현은 last night이 맞겠지 싶다.
아직도 2% 부족하고 어눌한 모국어인 한국어, 불안한 영어에 10년간 사용한 독일어가 섞이다 보니, 말을 하다 보면 재미 삼아, 혹은 실수로 조잡스러운 표현을 쓰게 된다.
얼마 전에는 내가 개발한 신조어라며 아내에게 steal-seeing이라고 하며 혼자 웃겨 죽는 줄 알았다. 한국말로는 훔쳐보다. 영어에선 있을 리가 없는 표현이다.
hit the chicken(닥쳐), 토론-ting(discussting, 더럽다는 표현을 나름 돌려서 얘기할 때 쓴다)이 대표적인 예시에 해당되고, 부부끼리 하는 농담이라 가끔은 19금도 섞여있기도 하지만, 정작 뜻을 이해하고 웃으며 뿌듯해하는 건 나지, 아내는 오늘도 한심스럽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나를 가엽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