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잘츠부르크로 이사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10. 잘츠부르크로 이사


합격소식을 최종적으로 받은 나는 곧 이사 준비를 했다.

부랴부랴 잘츠부르크에 방을 구하게 되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한 나는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으로 숙소까지 걸어서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거운 짐을 양손으로 끌면서 1시간을 넘게 걸어갔다. 집주인이 마침 문 앞에 서 있었다. 파키스탄 출신의 오스트리아인 이였다. 70을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20180307_140151.jpg 잘츠부르크, 도른베르크 길목 | Dornbergasse [2018년 3월, 떠났었던 숙소에 다시 방문... 아쉽게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으로 올라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제일 작은 방이었다.


모든 짐을 풀자마자 집주인이 내려오란다. 커피 한잔 하라며.

나는 학교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지부터 물어보았다. 8번을 타고서 내린 후 강을 건너면 바로라고 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환율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한 달 생활비를 당시 기준으로 630유로를 받고 있었다. 숙소 280유로에 보험 약 50유로, 전화비(독일 핸드폰 요금이 포함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사에 독일 핸드폰 회사에서 아직 약정이 남았다며 해지를 못하게 했다)에 세탁비 포함해서 다 계산하면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돈은 최대 200유로 이하였다. 잘츠부르크의 물가는 정말 비쌌다. 아끼고 아껴야 겨우 사람답게 밥을 해 먹을 수 있었다. 모자란 적도 많았기에 한 번에 몰아서 먹는 경우가 많아졌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유럽에서 생활하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게 아닌 듯 잘 통하던 것들이 나에게는 늘 부딪힘의 대상이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갑작스럽게 나라를 옮겨야 하는 경우(혹은 귀국을 해야 하는 경우)에 핸드폰 약정이 남아있을 경우, 남은 약정을 미리 지불하고 해지하게 해 준다던지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잘츠부르크로 이사를 하고서도 약 1년 동안 독일의 은행계좌를 닫지 못하고서 매달 33유로의 핸드폰 요금을 보냈어야만 했다.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나를 위해 아는 지인이 가입해준 핸드폰 요금제였지만, 불필요한 계약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생각해 보니, 그 지인도 나만큼 독일어를 못했었다.


당시 라이프치히에서는 정규 대학교에 등록이 되면 비자를 기본 2년은 받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난 고작 1년을 받았었다. 비엔나에서 살 때에도 비자 연장에 필요한 서류를 똑같이 챙겨가서 똑같은 담당자에게 제출을 해도 나만 서류 불충분으로 한 번에 심사가 통과되지 않았었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


어쨌든,

이러한 사항을 미리 대략적으로 계산해 두었기에 학교까지는 일단 걸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여름의 잘츠부르크는 정말 아름다웠다. 30분 정도를 강가에 놓여있는 인도로 걷다 보면 학교로 가는 길이 나왔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 그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이 생각은 한 학기 만에 허물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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