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잘츠부르크(2)_마무리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9. 오후 시험...그리고 합격


오후 시험.


학사 지원자 순으로 해서 석사 지원자로 진행이 되었다. 첫 번째 지원자 입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듣고자 문에 귀를 대고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정된 시간보다 지연되기 시작했다. 오후 4시 반쯤에 면접 예정이었던 내 순서는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길어졌는지, 밤을 새우고 온 나는 점점 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긴장이 되었다 해도 피곤이 몰려오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내 앞 앞번호 지원자에게 순서가 될 때쯤에 나 좀 깨워달라고 하면서 나는 시험장 복도 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누군가 내 발을 치더라. 시험 감독관이었다. 잠깐 쉬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부랴부랴 내 짐을 챙기고서 시험장에 들어섰다.


약 10명의 시험 감독관들 앞에 난 앉았다.


가운데 두 선생님께서 내 곡을(지금 생각해 보면 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창피한 수준...) 보고 있었다. 내가 앉자마자 곡을 덮으시고는... 그래 우리 학교에는 왜 지원하게 되었는가... 첫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질문이 너무 뻔했다. 안될 거라고 확신했다. 면접관들이 지원자가 마음에 안 들었을 때 하는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독일에도 좋은 학교가 많은데 왜 오스트리까지 오게 되었냐길래 나는 정말 솔직하게 답변했다. 사실 오스트리아 시험을 볼 생각도 못했다. 선생님 말씀처럼 독일에도 시험을 본건 사실이지만 다 떨어졌고, 심지어 비자고 거의 만료돼서 더 이상 독일에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이곳 학교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에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께서 이곳 학교 출신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오스트리아에 시험을 볼 생각이면 잘츠부르크를 추천해 주셨었다고. 누구냐는 질문에 나온 선생님의 이름을 듣고서 그곳 면접관 모두가 그분은 정말 천재라고. 갑작스럽게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가게 돼서 안타까워했었다며 잘 지내냐는 질문을 하더라. 내 곡, 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구나 싶었다. 나름 밤을 새워서, 가장 싼 티켓을 구입해서 14시간을 걸려서 도착한 시험장인데...


내가 지원했던 선생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본인에게 지원을 했는데 자기를 아냐며. 사실 모른다고 했다. 온라인 지원서에 선생님 이름을 안 쓰면 지원 완료가 안되길래 작곡과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유일한 여자 선생님이어서 적게 되었다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말 대단한 선생님이셨다. 외할머니가 생각나는 인상을 가지고 계셨었다. 나의 어이없는 대답에 웃으시더니, 만약 내가 이곳 학교에 다니게 된다면 추가로 들어야 하는 수업들이 있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무슨 상관이겠냐, 합격만 시켜주면 뭐든 듣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 독일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독일에서 몇 년 있었냐길래 거의 1년 반 정도 되었다고 하니, 짧게 있었던 것 치고는 독일어가 아주 능숙하다고 하셨다. 난 웃음으로 받아쳤다. 독일에서 겪었던 면접시험들이 도움이 되었던지 난 이곳 학교가 안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유를 부리게 되었다. 결국 내 작품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못한 채 시험장을 나왔다. 심지어 시험시간이 많이 지체된 관계로 피아노 시험마저 생략되었다.


중앙역에 도착해서 밴치에 앉았다. 시험날이 5월이었는지 6월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저녁이라 그런지 조금 쌀쌀했다. 9시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었지만, 진이 빠져버린 나는 독일로 돌아가서 남은 시험들을 어찌해야 할지, 결국 한 곳도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면 어떻게야 할지 고민에 빠졌었다.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그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던 베를린 작곡과 시험, 비엔나 지휘 시험은 전부 불참하게 되었다. 피로가 너무 쌓였었나 보다.


잘츠부르크 학교에서는 약 1주일 후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었다. 이 학교마저 결과가 안 좋다면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랑 통화를 하게 되었다. 풀이 죽어있는 아들의 모습에 걱정을 많이 하셨었다.


돌아오고서 수요일이 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분명 합격했다는 얘기였던 것 같은데... 옆방에 있던 친구를 불러서 대신 읽어달라 했다. 붙었다.


IMG_2923.JPG 잘츠부르크, 호엔잘츠부르크 성 | Festung Hohensalzburg [2011년 8월, 성을 바라보며]


붙었다. 드디어.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합격 소식에 너무나도 기뻐하셨다. 잘츠부르크라는 얘기에 더욱더 좋아하셨다. 그곳 학교가 대단하긴 했나 보다. 그래도 합격증이 최종적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모르기 때문에(간혹 합격 후 학교 사정에 의해서 취소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여기저기 말씀을 삼가 주실 것을 요청드렸다.


나의 유학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이미 온 동네 소문을 다 내고 다니셨다.

아버지의 반응에 그동안의 서운함이 다 사라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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