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잘츠부르크에 대한 기억, 사람에 대한 상처

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by Gigantes Yang

11. 잘츠부르크에 대한 기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상처


잘츠부르크의 첫 시작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5_Salzburg(2015년 어느날...동네 뒷쪽).jpg 잘츠부르크, 헬부른 가로수길 | Hellbrunner Allee [2015년 어느 날... 산책]


당시 나의 나이는 벌써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 동문들은 나와 최소 8살 이상은 차이가 났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히 드물었고, 교류조차도 잘 없었다. 언젠가 영화로 보았던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생각났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 행세를 하고 있는 듯한 도시. 당연 어울릴 수가 없었다. 늦은 나이에 석사를 들어왔으니 어린 학생들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말 고맙게도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던 동생들이 몇몇 있었다.


작곡과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된 한국분이 있었다. 자그마한 외모에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던 분이었다. 같은 교수님 제자였다. 이분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고?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준 사람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유학시절을 글로 정리하면서 가장 솔직하게 기록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분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려 한다. 일단 간단하게 얘기해서 이 분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와는 거의 10살 차이가 나는 여성 분으로, 어릴 적 개인적인 이유로 인하여 정신이 멈춰버린 분이다.


거의 1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정신적으로.


처음에는 학교생활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었기에 감사했었다. 감사할 일을 만들어 버린 게 시작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3번째 희생자(?)라고 하더라. 어떠한 험한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화를 차단하면 문자를, 문자를 차단하면 이메일을, 이메일을 차단하면 다른 연락처로 어떻게든 연락을 하려고 했다.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싫어했다. 심지어 새벽 3시에 집 앞에서 기다린다며 연락을 하고서 아침까지 문 앞에 서서 있다가 간 적도 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최대한 무시하려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참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 정도 이 분에 대해서 얘기했으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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