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에게 |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추억하며
11. 잘츠부르크에 대한 기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상처
잘츠부르크의 첫 시작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의 나이는 벌써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 동문들은 나와 최소 8살 이상은 차이가 났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히 드물었고, 교류조차도 잘 없었다. 언젠가 영화로 보았던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생각났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 행세를 하고 있는 듯한 도시. 당연 어울릴 수가 없었다. 늦은 나이에 석사를 들어왔으니 어린 학생들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말 고맙게도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던 동생들이 몇몇 있었다.
작곡과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된 한국분이 있었다. 자그마한 외모에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던 분이었다. 같은 교수님 제자였다. 이분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고?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준 사람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유학시절을 글로 정리하면서 가장 솔직하게 기록을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분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려 한다. 일단 간단하게 얘기해서 이 분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와는 거의 10살 차이가 나는 여성 분으로, 어릴 적 개인적인 이유로 인하여 정신이 멈춰버린 분이다.
거의 1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정신적으로.
처음에는 학교생활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었기에 감사했었다. 감사할 일을 만들어 버린 게 시작이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3번째 희생자(?)라고 하더라. 어떠한 험한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화를 차단하면 문자를, 문자를 차단하면 이메일을, 이메일을 차단하면 다른 연락처로 어떻게든 연락을 하려고 했다.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싫어했다. 심지어 새벽 3시에 집 앞에서 기다린다며 연락을 하고서 아침까지 문 앞에 서서 있다가 간 적도 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어 최대한 무시하려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참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 정도 이 분에 대해서 얘기했으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