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gantes Yang Jan 28. 2023

난 먹을 만큼 먹었어

하지만 당신이 남기면 고마워

난 먹을 만큼 먹었어


어릴 때부터 식욕이 남달랐다.

다른 아기들은 아직 엄마의 젖을 떼지 못할 나이에 나는 이미 어른들이 먹는 걸 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울고 불며 겨우 얻어낸 라면 한 젓가락은 아기였던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일찍 음식에 눈을 뜨게 해 줬다. 시중에 파는 이유식 따위는 나를 배불리 채울 수는 없었다. 내가 우는 경우는 유일하게 배고플 때였다. 그랬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식당에 가면 늘 같은 걸 시켜 먹었다.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였다. 맥도날드에 가면 치킨버거, 버거킹에 가도 치킨버거, 롯데리아에 가도 치킨버거. 한식당에 가면 메뉴판을 쳐다볼 필요도 없이 늘 김치찌개였다. 돼지고기나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도 상관없었고, 멸치육수로 시원하게 우려낸 김칫국이었어도 상관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형은 또 김치찌개냐며 다른 것도 시켜 먹지 질리지도 않냐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내 스타일을 고집했다. 다만 내 음식에 누군가 숟가락을 대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맛이냐며 한입 먹을라 해도 각자 자신이 시킨 것만 먹자 했다.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어만 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다 함께 나눠먹는 걸 즐기지 가족들은 모이기만 하면 여전히 어릴 적 식탐이 유독 많았던 나를 놀리곤 한다.


아내와는 뭐든지 정말 전투적으로 먹는다. 둘 중에 누구라도 "난 지금 배가 별로 안고파",라고 할지라도 쉽게 믿지 않는다. 일단 눈앞에 있으면 무조건 먹고 본다. 식당에 가도 많이 시킨다. 가족식당 Family Restaurant를 가더라도 둘이서 기본적으로 3개는 시킨다. 고기류 하나, 파스타 혹은 밥종류 하나 그리고 야채종류 하나. 부족하다 싶으면 애피타이저 Appetizer로 모둠 감자칩이나 핫윙을 시킨다. 우리 부부에게 남긴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매우 드물지만 모 자르는 건 참을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치킨집에 가면 배를 채우기 전까진 일어나지 않는다]


치킨집에 가도 그렇다. 술집이나 치킨집에 가면 보통은 술을 즐기러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배를 채우러 가는 곳이다. 치킨만 시키는 일은 절대로 없다. 기본 한 마리에 모둠감자튀김이나 오뎅탕(어묵탕). 떡볶이. 그렇다고 맥주 한잔에 끝낼 우리가 아니다. 최소 두 잔은 마셔야 한다.


[일주일뒤 또다시 방문한 치킨집: 매운간장 소스와 닭똥집 튀김은 환상의 궁합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으깬 감자 Mashed Potatoes를 좋아한다. 일주일 정도 먹을 분량을 둘이서 만들어 놓는 건 의미가 없다. 둘 다 매번 먹는 거에 맘이 약해지기 때문에 "조금만 더 먹을까",라고 하면서 거덜내기 일쑤다. 큰 냄비 안의 어마어마했던 양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는지 매번 신기하다.

우리는 평소엔 콩 한쪽도 나눠먹는 각별한 사이지만 사실은 그 콩 한쪽도 경쟁하며 먹는 건 비밀.


우리는 각자 취향대로 사둔 맥주도 건드리지 않는다. 큰일 난다.


아내에게 먹으라도 사둔 주전부리도 오랫동안 손대지 않는 게 보이면 내가 조금씩 가져다가 먹기 시작한다. 신기한 건 꼭 바닥이 보일 때쯤 아내가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다시 사 온다.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아무리 먹는 거에 약한 나라고 할지라도 아내에게는 그래도 뭐라도 한점 더 주려고 한다. 살이라도 더 붙어있는 쪽을 준다. 여러 메뉴를 시켜도 아내가 유독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내에게 좀 더 몰아주려고 한다.


물론 둘 다 배고플 땐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각자의 입은 터지고 하지만, 아내는 조금씩 오래 씹는 걸 좋아하고, 나는 입안 가득 넣고 씹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먹는 속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곤 한다.


[중국집에 가면 각자 먹을 메뉴 하나에 탕수육이나 군만두를 반드시 시켜야 한다]

아내가 맛있게 먹을 때면 기분도 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배도 부를 때가 있다. 다만 몸은 그렇게 반응하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지, 입으로는 배부르다며 먹을 만큼 먹었다고 하지만, 숟가락을 내려놓은 채 아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아내의 젓가락이 집어든 음식물이 사랑하는 이의 입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내 눈이 따라다니고 있다. 아내에게 한점 더 먹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아도 몸은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지, 아내는 자신의 그릇에서 조용히 한 점을 집어 들고서 아무 말 없이 나의 영역에  자연스럽게 내려놓는다.


[메인 메뉴가 있으면 야채 정도는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절대적으로 기본 3가지 메뉴는 시켜야 한다]


아내가 배가 부르기만을 꼭 기다리진 않는다. 다만 나는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만 맛있게 먹었다는 주의고, 아내는 남기더라도 배불리 맛있게 먹어야 하는 주의다. 음식을 남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겐. 음식을 만들어준 이에 대한 실례라며 아내가 남긴 음식을 가져다가 먹는다. 다른 사람이 남긴 건 가져다 절대 먹진 않는 주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식욕이 너무 왕성해서 어머니께서는 도대체 내가 사람을 낳았는지 짐승을 낳았는지 모르겠다며, 어떤 음식을 줘야 얘가 덜 먹을까 고민하신 끝에 야채만 듬뿍 들어간 요리를 해주셨다. 보통 아이들에게 야채는 독과도 같아서 잘 먹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집은 그 뒤로 야채값만 엄청 나갔다.


어려서부터 단순히 식욕만 왕성했던 게 아니라 편식 자체를 모르고 자란 덕분인지 식탁에 어떤 찬이 놓여 있어도 배불리 잘 먹었다. 김치와 김 몇 장만 있어도 잘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한 사람이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음식 얘기만 하면

바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오늘은 당신 좋아하는 거 먹을까?", 한마디면 또다시 약해지는 마음.


오늘도 나의 귀는 아내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마음이다.

나의 눈은 이미 상대방의 젓가락질에 또다시 홀려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