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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an 31. 2023

흡연흡비

흡연과 비흡연

흡연흡비


*본 글은 흡연자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글은 아닙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라며...


사람마다 끊지 못하는 습관 | habit 이 있기 마련이다. 담배는 그 많은 것들 중 하나일 뿐. 


나는 흡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 대신 술은 즐긴다. 무리해서 마시지는 않지만 늘 조심스럽다.


어려서는 왜 몸에 해로운걸 많이들 할까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나 사는데 크게 지장 없는 것 같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물론 담배연기를 맡는 건 길거리 할거 없이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들 나름의 취미이자 기호식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불만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 버스를 기다리다 맞바람을 타고 내 코를 자극할 때면 불쾌할 때도 있지만 그냥 한두 걸음 물러나서 피하면 그만이다.


담배연기에는 발암물질을 비롯해 독성물질뿐만 아니라 대기도 오염시키고 삼림도 파괴하는 오염물질들이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다고 하지만 자연을 파괴시키는 주범이 어디 담배뿐이랴. 담배를 주범으로 몰아세워봤자 다. 아닌가. 세상엔 더 악질의 존재는 얼마든지 있으니.


많이들 군대 가서도 담배를 배운다. 물론 빠른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고 하지만. 나는 군대에서조차도 흡연을 하지 않았다. 신병 때는 내무실에 혼자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선임들이 쓰다 남은 모나미 볼펜 몸통 끝에 빨간색으로 칠해서 옆에서 들고 있게 했다. 나는 흡연하는 척하는 대신에 300원짜리 자판기 거피를 공짜로 매번 얻어 마셨다. 


대학교 때 친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한 모금 해줘야 모닝똥을 잘 본다고 했다. 아직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블랙커피 거하게 한잔 하면 장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가 싶다. 맞나?


지인들하고 술을 하러 가면 50분에 한 번은 담배를 태우러 식당 밖을 나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반드시 해줘야 하는 그들만의 룰이다. 5명이 모이든 10명이 모이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간다. 난 덕분에 그 시간 동안 내 앞에 있는 안주를 전부 집어먹는 자유를 만끽한다. 술 한잔 하면 담배가 유독 더 당긴다나. 그 맛을 모르는 나는 아직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리가 없다.


아직 성냥불을 붙일 줄 모를 나이에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아이는 할머니의 입에서 붙었다 떼 질 때마다 빨갛게 붉어지는 하얀 존재가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우신 할머니. 재떨이에 놓여있는 존재가 신기했는지 작은 손으로 집어 올려서 여기저기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왜 빨개지지 않는 걸까. 아! 입에 가져다 대야 하나보다. 입에 대보기도 전에 아이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갈기신 할머니.


"쬐깐한 게. 오데서!"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는지 그 뒤로 지금까지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담배향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익숙해졌을 뿐이다. 윗집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담배냄새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아파트가 금연아파트가 아니지만 주민이 항의하면 금지할 수도 있다는 관리사무소장님의 말씀에 감사하지만 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남의 눈치 봐가면서 해야 한다면 집에서 뭘 할 수 있겠나 싶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지 옆집의 음식냄새도 잘 스며들고, 옆집의 부부싸움 소리 내용도 집중해서 들으면 유추해 낼 수 있지만 그러려니 한다. 일반적으로 자야 할 시간에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소음도 참겠다. 내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같이 조심하겠지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게 인생이지 싶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코로나 | COVID-19로 다들 타인과의 거리가 더 멀어졌고 나만의 공간이 더 중요해졌는지 사람과 마주치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최근까지는 춥기도 했고, 베란다 흡연은 자제해 달라는 관리실의 방송보다는 자신을 지켜야 했는지 화장실이며 베란다며 가리지 않고 담배를 태운다. 내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데 딱히 막을 방법도 없을뿐더러 크게 상관은 안 한다. 바깥에서 스며들어오는 냄새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집 안에서만 그 냄새의 근원지가 발생하지만 않으면 된다 싶었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자신의 집에서 냄새가 배는 건 똑같이 못 참겠는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피는 이웃이 꼭 있다. 담배연기는 바깥으로 내뿜어진 그 담배 냄새는 무조건 동서남북으로 갈라져서 다른 집들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태우다만 담배는 절대 자신의 집에 버리지 않는다. 1층 화단을 향해 꽁초를 던진다. 사연이 있겠지.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겠지. 그래도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불씨를 제대로 끄지도 않고 타고 있는 꽁초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으로 던질 수가 있을까 싶다. 오늘에서야 1층 주변을 확인해 보니 말도 못 할 정도로 어마무시한 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자신의 집만 중요한 건가.


불로 번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윗집에서 버린 꽁초: 비가 내렸으니 망정이지 화재가 날 뻔했던 상황이었다]


3주 전 외풍기 커버 위로 꺼지지 않은 꽁초가 떨어져 있었다. 10층을 넘어선 높이에 집이 있었으니 밑에서 던져 올리진 않았을 테고. 윗집이었다. 덕분에 커버에는 원치 않은 담배빵이 생겼다. 누군가가 담배를 태우고 던졌다는 물증이 없었기에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방송을 통한 안내방송이었다. 그래, 얼마나 나가기 귀찮았으면 베란다에서 볼일을 보고 던졌을까... 실수였겠지. 결론을 내리고 잊기로 했다. 


[→: 3주 전. 보란 듯이 놔뒀다] [←: 어제. 덕분에 두 번째 담배빵이 생겼고 연기가 나는 걸로 봐서 버린 지 얼마 안 됐다]


어제 아침에 분리수거를 하고자 베란다를 열어서 한 주간 모아둔 폐품을 정리하러 들어갔다. 설마 했다. 원치 않은 두 번째 담배빵. 이번에는 불이 붙어있었다. 이건 고의다 싶었다. 일부러 조준해서 떨어트렸다. 도대체 왜? 이번에는 사진을 찍어서 관리사무소에 찾아갔다. 작은 꽁초 하나가 얼마나 심각해질 수 있는지 설명했다. 그렇다고 이웃 주민과 그 어떠한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내가 직접 찾아가기보다는 관리소장님께 정중히 부탁을 드려서 집안에 혹시라도 흡연자가 있으면 베란다 바깥으로 꽁초를 버리는 일을 삼가 줄 것을 요청드렸다. 집밖으로 쓰레기나 오물을 투척하더라도 내가 뭐라 할 이유는 없었고, 집안에서 무얼 하던 그들만의 사정이기 때문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았다. 집안에서 흡연을 하든 말든 남의 사생활까지 내가 끼어들 수는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베란다 바깥으로 담배꽁초를 굳이 버려야 한다면 바로 아랫집의 외풍기 커버 위에 만큼은 자제해 줬음 했다. 


화는 났지만 서로 언성을 높이는 것만큼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도 없기 때문에 좋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관리사무소장님과 경비아저씨께서 외풍기 위에 떨어진 담배꽁초 사진을 A4용지에 윗집 방문을 하셨고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1층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사진과 함께 경고문을 부착하셨다. 누가 봐도 윗집의 소행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이번에도 정확한 물증이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일단 지켜보자고 하시면서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또 하겠냐고. 설령 바로 윗집이 아니더라도 사진에다가 경고문까지 걸어두었으니 버린 사람은 스스로 알고서 조심할 거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고자 최대한 노력하신 두 분께는 너무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나는 흡연자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몸에 해로운 건 알고 있지만 이것 말고도 몸에 해로운 건 얼마든지 있다. 담배연기만 조심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들만이 즐기는 끊지 못할 기호식품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충분히 존중한다. 때로는 설득보다는 나 스스로를 먼저 보호하는 게 답일 때가 있더라. 세상은 좋은 게 생기면 반드시 그에 반대되는 것도 같이 따라서 생기기 마련이다. 상황이던 사람이던. 하루에 몇 갑을 피워도 죽을 때까지 건강에 이상 없이 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 한 대씩만 피워도 몸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케바케 | case by case인 셈이다. 가끔 보면 사람마다 독소를 해독시키는 기능이 상대적인 듯싶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방송에서 어떤 연예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마다 자신의 인생에서 허락된 술의 양은 정해져 있고 그 한계점을 벗어나는 순간, 그리고  그 술을 모두 소비한 순간에 큰 아픔이 찾아올 것이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술, 담배뿐만 아니라 뭐든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즐겼던 것을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못하는 마음의 아픔도 있겠지만, 건강을 좀 더 생각해서 즐기자는 말이 아닐까 하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공생 | 共生1) 하고 상생 | 相生2) 하는, 그래야만 하는 세상.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기준점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만나 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 서로 탓하고 원망하기 전에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먼저 노력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준비가 되어서 중간 지점에 만나야 하지 않을까.






1) 공생 | 共生: 종류가 다른  생물이 한 곳에서 서로 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사는 

2) 상생 | 相生: 두 가지 또는 여럿이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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