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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ul 02. 2023

길치 + 서울촌놈

그래도 사는데 지장 없다

길치 + 서울촌놈


아내와의 대화에서 나는, 


"어린 시절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서울 지리를 잘 몰랐고, 버스도 지하철도 잘 탈 줄 몰랐어."


아내 왈,


"서울 살면서 그건 자랑은 아닌 것 같아."


어려서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다.

'자주' 다녔다는 얘기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 다 같이 이사를 다닌 것과 아버지께서 직업상 혼자 지역을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자주 다닌 셈이다.


아내는 아니라고 해도 지금은 길 찾는데 도사라고 생각되지만, 이사를 다닌 것과 별개로 어려서부터 지리에 굉장히 약했다. 정확한 장소를 알려주지 않으면 약속 장소에 제때 도착하기란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는 주소,  주변 건물 및 지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가 많았다.


[전주의 한 골목: 이제는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두렵지 않고 호기심만 가득]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데 그땐 왜 그리 심했을까?


지리에 약했던 이유에서인지 늘 다니는 길만 다니게 되었고, 늘 같은 버스를 타며 같은 승하차장을 이용했다. 지하철을 타도 늘 같은 정거장, 같은 칸에서 내려서 같은 출구에 내리곤 했다.


평소에 타던 버스가 아니거나 평소 다니던 루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예외의 상황이 단 한 번이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원래 내려야 했던 곳부터 해서 모든 거리와 건물, 신호등을 몇 번 지나쳤는지, 좌회전이나 우회전은 몇 번 했는지 머릿속에 때려 박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경우에는 늘 내렸던 정류장으로 돌아가야 마음이 편했다.


[인사동의 거리: 길 잃을 걱정 없이 거리마다 맘 편히 둘러볼 여유가 생긴 지 오래다]


지금이야 뭐 어디든 금방 찾고 '길치'의 누명(?)을 어느 정도 벗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에 가기 전에는 온라인 지도 서비스(구글 혹은 카카오맵 등)를 통해서 도착지까지의 길을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시뮬레이션을 그려보기도 한다. 한 번은 아내와 영어권이 아닌 외국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우부부가 계획했던 모든 장소와 호텔, 식당의 모든 루트를 외워서 간 적도 있다. 로드뷰를 통해서 거리 이름, 분위기, 외우기 쉬운 도로 형태를 모조리 외워서 어떤 건물이 나올 때 언제쯤 꺾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속도로 가면 대략적으로 도착할지. 심지어 예상외의 도로도 예상하면서 필요에 따라 즉흥적으로 목적지로 향하기도 했다. 물론 머릿속에 모든 정보가 들어가 있다는 가정에서 가능다.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교과목 중 하나인 한국지리에도 매우 약했다. 시험 때 아무리 공부해도 반타작이 겨우였다. 평균점수 올리라고 있는 과목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점수는 까먹는 과목 중 하나였다.


지리에 약하다 보니 서울에 암만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안 가본 곳이 너무 많았다. 서울에 잠깐이라도 거주한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가봤을 명소나 맛집은 손에 꼽을 정도이거나 30대가 넘어서 아내손을 잡고 처음 방문한 게 대부분이다.


명동에 있는 명동 칼국수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명동거리를 방문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음대 입시를 준비하면 서일 것이다. 그래도 문화를 조금이라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하다못해 옷집을 들어가 보던가 기념품 샵이라도 들어가 볼 것이지만 난 달랐다. 나에게는 방문목적이 있었다. 7번 출구로 나와서 늘 향한 곳은 대한음악사 명동지점(물론 이곳은 지금 없어졌고, 이곳을 운영하던 은 예당 근처에 다른 이름으로 음악서점을 여셨다). 주변을 돌아볼 생각조차 안 했다. 음악서적이 필요하니 명동을 간 거고 목적달성을 하면 바로 집으로 향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당시엔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이고, 그때쯤 다음(daum) 포털 사이트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니깐 핸드폰으로 보는 내비게이션이 어디 있었을까. 114에 전화해서 주소와 연락처를 알아내고 지하철역에 내려서 느낌으로 골목골목을 헤매며 찾아가는 게 전부였던 시기였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찾아내기 어렵지 않은 위치에 있었지만 미리 꺾는다던지 한번 잘못 들어서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루프(loop)에 들어서게 되기도 했다.


명동칼국수? 대학교 때 지인을 통해서 처음 먹어보고 다시 방문했을 때 30살 후반이 되어서야 아내와 함께 방문한 게 아마도 생애 두 번째 방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방문했을 당시엔 내가 먹었던 음식이 명동 칼국수였는지도 몰랐고, 그냥 가자니깐 따라간 기억뿐이었다. 그냥 비좁은 식당 안에서 먹었던 칼국수 정도로 회상된다.


지나고 보니 나도 참 재미없게 살아왔구나 싶다.


그렇다고 집에 틀어박혀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그냥 혼자서 어딘가를 가본 적이 없었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늘 누군가를 따라다녔다. 내 앞에는 대부분 가족이 가는 길이였으니.


아내와 둘이서는 외국에서 만남이 시작되어 2~30대 대부분의 시간을 타지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에서 함께 뭔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지역 곳곳의 명소나 맛집을 잘 알고 있는 아내 덕에 우리는 오늘도 언제 갈지 모를 여행지와 식당을 찾아본다. 물론 나보단 아내가 검색에 빠르기 때문에 나는 또다시 온라인 맵을 열어서 지리와 로드뷰 상황을 머릿속에 기록하기에 바쁘다. 운전을 하다 보면 길도 금방 눈에 들어오고 잘 찾게 된다고 하지만 아직도 습관이 남아있는지 여행 전날에는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들어설까 봐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다 늦게 잠들곤 한다.


그래도 예전처럼 길을 잃지는 않는다.

아내가 동의를 할지는...



outro


[밤눈이 어둡기 때문에 평소에 다니던 길조차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지리만 약한 게 아니라 밤눈도 어둡다. 밤인데 가로등은 없고, 비까지 오면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 할지라도 평소보다 몇 곱절은 긴장하게 된다. 지금도 밤길만큼은 여전히 힘들고 헤매기 십상이다. 그래서 밤에 운전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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