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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Jun 23. 2021

할아버지 할머니

오랜만에 포천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지난달 오랜만에 포천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왔다.

거의 몇 달 만에 찾아뵙고 왔다. 그동안은 아주 가끔씩 연락을 드렸었다.


비가 내리면 오지 말라고 하셨기에 날씨가 마침 좋았던 날에 겨우 방문했던 아버지의 고향 포천. 아버지께서 계신 포천의 금주리 지역은 비가 내리면 동네가 잠길 정도로 내린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생각도 하기 싫다.


최근에 비가 참 불규칙하게 자주 내렸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잡기만 하면 비가 내리는 바람에 매번 오지 말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비가 내리더라도, 눈이 내려도 가겠다고 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어버이날에도 비가 내리는 바람에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지내셨던 고향이다. 그 시절 같은 가문의 어른들이 터를 잡아서 마을을 만드셨다고 했다. 어렸을 때 명절 때마다 찾아가면 동네 어르신들 성씨가 모두 같아서 누가 누군지, 촌수를 헷갈려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고향분들이 거의 계시질 않는다. 아버지께서도 은퇴 전까지는 다른 지역에서 계시다가 고향인 포천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휴일 찾았던 포천은 정말 반가우면서도 뭔지 모를 감정들이 일어났었다. 늘 아버지께서 몰던 차 뒷좌석에 앉아서 소똥 냄새를 맡으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셨던 마을을 들어섰던 기억이 있었는데, 직접 차를 몰고 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과는 조금은 변한 마을이었지만, 금방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대문 밖으로 나오셔서 손주를 반갑게 맞이해주실 것만 같았다. 두 분이 계시지 않는 집에는 누군가가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능이버섯과 약재로 육수를 우려낸 백숙 [포천에 위치한 음식점 <취락>]


아버지께서는 능이백숙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하셔서 그곳엘 나와 아내를 부르셨다.  아침부터 식사를 거르고 왔던 나와 아내에게는 조금 모자란 양이 아니었나 싶었다. 백숙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포천에서 하는 식사라서 그런지 느낌이 평소 같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시골의 음식은 다소 투박하지만 서울에서는 잘 못 느끼는 정이 있다. 각 지역마다 지역 특성의 맛이 있듯이 포천에서도 그 특유의 음식 맛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일 년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겨우 방문을 하지만 예전에는 거의 매달 한 번씩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갔었다. 


차 소리에 가장 먼저 대문 밖을 나오시던 할머니가 생각나는 동네. 잘 있었냐며 나와 형의 두 볼을 만지시던 할머니의 손. 손주들이 먹고 싶다 하면 뭐든 해주셨다. 닭고기가 먹고 싶다 하면 집 뒤에 있던 닭장에 들어가서 바로 닭을 잡아오셨다. 연세와는 상관없이 집안일, 밭일로 매일같이 바쁘셨지만 손주를 위한 시간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포천향교의 교장선생님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늘 붓글씨를 하고 계시다가 도착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명필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한시 | 漢詩 를 즐겨 쓰셨다. 교육자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손주들에게 늘 좋은 말씀을 해주시곤 했다. 명절 때면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손주들에게 학년별로 세뱃돈을 주셨다. 초등학생은 천 원, 중고등학생은 오천 원, 대학생은 만원, 그 이상은 없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 하더라도 우리 형제들은 돈을 모아서 바로 마을 슈퍼로 달려가서 먹을 것을 잔뜩 사 와서 과자파티를 했었다. 한 번은 아몬드 초콜릿을 사 왔었는데 유통기한이 1주일이 지나 있었다. 과자가 유통기한이 지나기는 참 쉽지 않은데. 암튼 가족들이 모여서 시끌시끌했던 재미가 가득했던 포천. 하지만 그런 추억도 끊긴 지 오래다.

 

산정호수 [코로나로 여행이 제한되니 많이들 자연으로 모인다]

포천에는 아직도 대전차 방호벽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많이 철거가 되었다. 식사 후에 우리가 찾았던 산정호수. 포천에서도 한참이나 들어가야 나왔던 산정호수에 도착하기까지 대전차 방호벽의 흔적들을 볼 수가 있었다. 도착해서 느꼈지만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듯했다. 어려서는 거의 매달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왔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지는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포천에도 맛집이 꽤나 많다는 것, 그리고 자연경치가 굉장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따뜻했던 기억이 가득한 포천. 이제는 아버지께서 계신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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