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순우리말로 예쁘게 잘 지었다. 어느 동네 놀이터에 가도 미끄럼틀은 항상 있다. 아마 미끄럼틀을 타보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용 방법은 매우 간단한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 계단으로 올라가서 2단계, 사면으로 미끄러진다.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작자의 의도와 정반대로 사면으로 기어 올라가는 어린이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점에서 아이들에 대한 오해가 생긴다. 생각을 해보자. 아무리 아이들이라고 해도 계단으로 올라가서 사면으로 미끄러진다는 것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러면 왜 굳이 계단이 아니라 사면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일까.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때는 장난기도 심할 때라서, 재밌는 걸 추구하기 때문에, 규칙을 지키는 데 미숙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를 생각할 것이다.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바로 미끄럼틀은 생각만큼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를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미끄럼틀은 하나도 미끄럽지가 않았다. 경사를 좀 더 가파르게 하거나 마찰을 줄이면 해결되겠지만 아마도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미끄럽지가 않기 때문에 결국 미끄러져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꾸역꾸역 밀면서 내려간다. 재미없는 미끄럼틀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사면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생명력을 잃을 뻔한 미끄럼틀에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올챙이 적 기억을 상실한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단순히 장난꾸러기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어른들은 ‘90년생이 온다.’, ‘MZ 세대’ 등의 용어를 써가면서 젊은 세대를 비판한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의 저자는 20대인 MZ 세대가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워라밸만 추구하고, ‘호갱’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자신을 사회에 맞게끔 바꿔야 할 만큼 지금 사회는 완전한가? 앞의 말을 뒤집어보면 현재 사회는 워라밸이 없고, ‘호갱’이 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아닐까?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이 힘들다고 하는데, 사실은 일자리가 많음에도 박봉에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선진국 반열에 들어간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도 열악하고 박봉에 위험한 업종을 강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 어른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외국인 근로자를 값싸게 채용하는 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미끄럼틀이 재미없어서 이용하지 않는다면 미끄럼틀을 수리하고 개선해서 더 잘 미끄러지고 재미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다른 아이들을 데려온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언젠가 미끄럼틀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이들이 청년이 될 때쯤, 현재 젊은이들은 어른 세대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과오를 답습하지 않고 잘 개선해 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