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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Mar 01. 2024

신성한 가르침

겨우 컵 하나

컵 안에 차를 담으면 찻잔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된다. 마치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만났을 때는 얘기를 잘 들어주고, 사진에 찍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처럼 컵은 누구를 만나도 잘 받아준다. 재밌는 건, 물을 담으면 컵이 되고, 차나 술을 담으면 잔이 되어버린다. 잔(盞)을 영어로 한 게 컵(cup)일 뿐 같은 존재인데도 물잔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살짝 어색하고, 술컵이라는 말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컵이라는 존재는 모두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존재이다. 컵은, 술을 만나면 술잔이 되고, 주스를 담으면 주스잔이 되고, 차를 만나면 찻잔, 커피를 만나면 커피잔이 된다.


컵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위쪽이 뚫린 원기둥 모양의 몸통 옆쪽에 손잡이가 하나 달린 컵을 떠오른다. 컵 안에 뜨거운 커피를 따른다고 해보자. 보통은 절반에서 3분의 2 정도의 양을 따를 것이다. 그보다 적게 따르면 뭔가 아쉬워서 더 따르게 될 것이고, 그것보다 많이 따라 마시려고 하면 컵은 너무 과하다는 듯이 약간의 커피를 뱉어낼 것이다. 컵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과유불급을 가르쳐주지만 그 가르침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지적당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가르침을 받은 우리는 감사함의 표시로 컵에게 키스한다. 컵은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이 담고 있는 그것을 허락해준다. 과유불급을 배운 우리는 이제 뜨거운 커피를 입에 들이붓지 않고 천천히 음미한다. 그렇게 몇 번의 키스를 마치면 컵은 자신이 가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허락하고, 바닥을 보여준다. 컵에 뜨거운 커피를 따르고 마시는 과정은 생각보다 신성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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