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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Apr 05. 2024

스콘의 경고

겨우 스콘 하나



  두 명이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 유명한 방법이 있다. 한 사람이 케이크를 절반으로 자르면 나머지 한 사람이 두 조각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첫 번째 사람은 최대한 공평하게 케이크를 자를 것이고, 나머지 선택하는 사람도 분배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공정하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래도 사람이 완벽하게 반반으로 자를 수는 없으니 선택하는 사람이 아주 약간이라도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제시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스스로 합의했다.

  허나 이는 케이크 같이 내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좋은 방안이다. 만약 스콘이라면? 한 사람이 스콘을 자르고, 나머지 한 사람이 하나를 선택한다고 생각해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본도나 톱 등을 가져오지 않는 이상, 포크나 나이프로 스콘을 정확히 반으로 자르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정책이나 방안이 다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는 최선으로 보이는 방안이 다른 상황에서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것은 다르게”라고 한 것처럼 좋은 정책이나 방안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학교에서 교육학 관련 토론 수업을 하면 항상 핀란드식 교육을 선진적인 교육정책으로 언급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OECD에서 실시한 PISA(국제학력평가) 지수에서 핀란드는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의 교육이 잘못되었고, 핀란드식 교육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끌고 가는 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핀란드와 1, 2위를 다투고 있기도 하다. 정책 입안도 마찬가지다.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해서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민자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보인다. 외국인 이민자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시행하는 정책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가져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유럽과 한국은 지정학적 조건이 다르고, 문화적 조건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다. 그에 따라 정서와 심리 등 다른 요소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의 정책이 아무리 좋아 보이더라도 그대로 대입하는 게 아니라 해당 국가의 상황과 여러 요건을 최대한 파악해야 한다. 케이크에 대입했을 때 좋은 방법을 스콘에 그대로 대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실정에 맞게 반영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만 하면 더 큰 부작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두루미가 아무리 호리병이 좋다고 추천하더라도 여우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야 한다. 어쩌면 반으로 쪼개지지 않는 스콘은 몸이 부서져가면서까지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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