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그리고 꿋꿋이
겨우 나뭇잎 하나
나뭇잎은 나무의 외모를 담당한다. 은행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 머릿속으로 나무를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뿌리도 아니고, 줄기도 아니고, 가지도 아니다. 나뭇잎이다. 나무에서 가장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이파리의 색과 모양은 나무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산은 나무로 덮여 있고 나무는 잎사귀로 덮여 있다. 산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무이지만 그 나무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뭇잎이다. 그리하여 작은 나뭇잎 하나가 모이면 큰 산을 이루는 것이다.
나뭇잎은 나무의 소통과 살림을 담당한다. 잎에 있는 엽록체는 잎을 녹색으로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햇빛과의 소통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물과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와서 태양을 부르면 태양은 산소와 포도당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자연의 물물교환이다. 나무는 나뭇잎이 구해온 포도당을 가지고 녹말을 만들어 한 해 살림을 꾸려간다.
여름철 내내 광합성을 하고 난 엽록체는 엽록소가 줄면서 힘을 잃는다. 젊고 패기 있던 파릇파릇한 색은 성숙하고 멋들어지면서 울긋불긋 변한다. 그리고 버드나무처럼 아래로 늘어져서 힘겨운 중력을 버티고 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가면 초속 5cm의 속도로 천천히 떨어진다. 나뭇잎은 다 같은 나뭇잎이 아니라는 듯이 각자 다른 타이밍에 다른 방향으로 살랑살랑 떨어진다. 물기가 빠지고 헐벗은 나무는 혹독하고 날카롭게 보인다. 마른 가지들이 칼날처럼 뻗쳐 있다.
발아래 떨어진 낙엽은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덮고 있던 흙의 자양분이 된다. 다시 나무에게로 들어간다. 나무에게로 들어간 낙엽은 내년의 나뭇잎으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