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거창하지 않아도 돼

수많은 꿈을 지나 도착한 자리

by 자청비

2023년 봄, 생뚱맞게도 SNS 속 홍보 글 하나에 눈길이 갔다. 별 고민 없이 소설 쓰기 강의를 신청했다.

한 달여간 강의를 들으며 소설을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저자 책을 내준다는 말에 혹했다.


남편은 갑자기 무슨 글이냐며 묻긴 했지만, 하고 싶으면 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있던 소설 한 편이 얼마나 어렵게 태어나는지 느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소설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한 달을 버티며 소설을 써냈는지 모르겠다.

기간은 짧았고, 마감 안에 내지 못하면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가 되기에 깊이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대충’ 소설을 완성했다. 공동저자 책이 출판되었고, 나는 부끄러움에 책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천쉐 작가의 책을 읽다 소설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문득 그때의 미완성 글들이 떠올랐다.

두 해 만에 다시 파일을 열었다. 부끄러워서 첫 문장은 읽지도 못하고 넘기다가, 결국 한 번 끝까지 읽었다.


유치하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단어도, 이런 문장도 내가 쓸 줄 알았네.’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스쳤지만, 나는 다시 컴퓨터를 꺼버렸다.

아직은 소설을 붙잡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벌여 놓은 일들이 많아,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가득 찬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소설을 다시 써보고 싶다.

학창 시절, 인터넷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울고 웃던 날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그 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시절 내 꿈은 소설가였다.


꿈은 자주 바뀌었다.

현모양처인 엄마, 학교 선생님, 소설가, 만화가, 사무직, 심지어 마술사까지. 수없이 많은 꿈을 품었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내가 상상한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나는 꿈을 꾸지 않기로 했다. 현실에 치여 살기에도 벅찼고, 상처받은 나를 스스로 보호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은 멀어져 갔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게는 더 이상 ‘꿈’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나에게도 다시 꿈을 꿀 여유가 생긴 듯했다.

번역가라는 꿈을 꿔보기도 했고, 사업가라는 꿈을 꿔보기도 했다.

예전과 달리 실행도 해보았지만, 실패는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실패가 반복될수록, 나는 묻게 되었다.

‘꿈을 꾸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짜 내 꿈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한참을 돌아 돌아, 내가 내린 결론은 뜻밖에도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건강염려증이 있어 음식에 예민하고, 비타민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사람으로,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것.

매일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돕고,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일도 하고, 서로 잘 소통하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품게 된 꿈이었다.


꿈은 거창하지 않아도 됐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현실에 치여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이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살아내려 애썼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


삶은 그렇게 흘러왔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이상한 일들, 뜻밖의 행복, 잠깐 스며드는 여유로운 시간들.

당장 오늘조차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후회 없이 하루를 건너는 것이 나의 소망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꿈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지금 말한 것이 누군가의 정의와 다르더라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