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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Oct 17. 2023

26화. 계란 이불밥?

조선 분식집3

"계란이불밥...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나으리."


"그것 참 기대되는구나! 빨리 좀 부탁한다."


"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나으리."


드디어 주문을 마친 구길.

이를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장성대군이 그에게 물었다.


"여기는 딱 봐도 주막집이 분명하고, 주막집이면 당연히 국밥이나 전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일텐데... 그것 참 특이하구나? 김치볶음밥? 게다가 뭐? 계란 이불밥... 이라니? 이 나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들뿐이니..."


"예, 그렇습니다. 소인도 어떤 행인의 소개로 우연히 들려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으니까요."


"그러니까, 구길이 네 녀석의 말대로라면 여기는 주막이 아니라 분식... 집이라고 했지?


"예, 그렇사옵니다."


"그 뜻은, 분명 가루 분(粉)에 밥 식(食)이라고? 


"예!"


"분식이라...? 그럼 분식집이란 가루를 이용해 만든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란 뜻인데... 내 그런 개념이나 이름은 또 처음 들어보는구나? 이건 청국이나 왜국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대체 이건 어디에서 유래한 이름이더냐?"


"그것이... 안 그래도 제가 좀 물어봤는데요... 어디에 존재하는 그런 이름이 아니라, 이 집 주인이 직접 지어낸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만간 그 가루로 만든 음식도 선보일 거라는 이야기도 들리긴 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흠..."


'세상에 없는 이름과 음식들이라... 조금 수상쩍은 구석이 있긴 한데, 과연 어떨지... 이 집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좋겠군!'


장성대군은, 분식집의 부엌과 주위 손님들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 집이 예사롭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나도 아직 배울 것이 많은가 보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이놈아! 너도 잘 알다시피, 내가 또 맛있는 술과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더냐? 내 다른 건 몰라도, 그간 이 조선 땅에 존재하는 어지간한 음식은 다 먹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세상은 넓디넓구나!"


"아... 그건 소인의 생각도 같습니다. 이 집의 음식은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한 궁의 상차림에서도 본 적 없으니까요."


"대체 어디에서 온 음식인지... 어찌 보면 지극히 소박한 느낌인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히니, 이것 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러게 말이다! 내 우선 음식의 맛을 보아야, 정말 너의 말처럼 맛이 좋은지 알 수 있을 테니... 만약 정말로 맛이 좋다면 이곳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모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구나!"


"그것이... 음식을 만드는 자는 주모가 아니라, 남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 숙수(熟手)인 것이냐?"


"더 자세한 내용은 소인도 잘 모릅니다. 전 그저 이곳의 음식이 너무나 맛이 있기에, 나으리께도 맛보시게 해드리고 싶어서..."


"허허... 알겠다. 내 어찌 너의 그 마음을 모르겠느냐? 어쨌거나 너의 말을 듣고 보니 더욱 기대가 된다! 그래! 어디 한번 먹어보자꾸나!"


"예, 나으리."


두 사람의 대화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그러는 사이 연아가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고, 그녀의 두 손에는 그들이 주문한 음식이 들려있었다.


"여기, 김치볶음밥과 계란이불밥 나왔습니다~ 맛있게들 드세요! 홍홍홍..."


언제나 그렇지만, 매상을 올려주는 손님들에게는 한결같이 친절한 연아!

그녀는 상 위로 장성대군이 주문한 김치볶음밥과 구길이 주문한 계란이불밥, 그리고 잘 익은 김치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음식이 무척 빨리 나오는구나!"


"예, 그렇습니다. 나으리"


"그럼 어디 한번 맛을 볼까?"


".........."


"허허!!!"


장성대군은 상 위에 놓인 음식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 음식들이... 참으로 내 여태껏 본 적 없는 것들이 맞는구나!"

"그러니까... 분명 이름처럼 <밥>이 맞는 듯한데..." 

"내가 시킨 김치볶음밥이란 것도 그렇고... 특히 구길이 너의 계란이불밥은 생긴 것이 정말로 범상치 않구나!"


"그...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참으로 놀랐습니다."


사실 장성대군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구길이 주문한 것은 '계란이불밥'이란 이름의 '오므라이스'였기 때문이다.

까만 국밥 그릇 안에 노란 계란이불로 동그랗게 감싼 오므라이스를 넣은 뒤, 그 위로 빨간 남만시 개찹(토마토 케첩)을 사선으로 얹어 모양을 낸 것으로, 당연히 조선 사람들에겐 무척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이 노란색의 것은 계란인듯한데... 상당히 곱구나? 정말 이름 그대로 계란이불의 모양을 하고 있도다!"

"그리고 그 위로 놓인 이 빨간 것은 고추장... 인가? 하지만 그보다는 색이 옅고 좀 더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는 듯 보이는데..."


자신이 주문한 김치볶음밥이 아닌 구길의 계란이불밥에 더 관심을 보이는 장성대군.

그의 모습을 보고 이를 눈치챈 구길이, 장성대군을 슬쩍 떠보았다.


"나으리, 혹시... 계란이불밥에 관심이 더 가시면, 제 것과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장성대군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구길을 쳐다보았다.


"그... 그래도 되겠느냐?"


"제 계란이불밥에서 이리 눈을 떼지 못하시는데, 이건 부디 나으리 먼저 드셔보시지요!"


"흠흠... 내가 꼭 그 음식이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도 생긴 것이 재미있기에 선비 된 자로써 대체 어떤 음식일까 궁금해서 그러는 것일 뿐..."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소인의 걱정은 마시고 오늘은 <선비>님의 궁금함을 해소하시기 바랍니다. 저야 뭐 김치볶음밥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계란이불밥은 다음에 와서 먹으면 되니까요."


"그래!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그걸 거절하는 것도 선비의 도리가 아니지! 내 오늘은 고맙게 잘 먹도록 하겠다."


"예예~"


구길과 밥을 바꾼 장성대군은 우선 계란이불의 위에 있는 남만시 개찹을 숟가락으로 찍어 혀 끝으로 가져가 보았다.


"이게 묘하게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오옷!"


달콤함을 머금은 새콤함이 혀 끝을 통해 느껴졌다. 그건 장성대군이 여태껏 맛보지 못한 종류의 맛이었다.


"이건 무척 시구나!"


"그렇습니까?"


"그래...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건 고추장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묽고, 매운맛이 아닌 신맛이 무척이나 강한 것이... 그렇다고 또 식초와도 결이 다른... 그런 묘한 맛이로구나! 또한 신맛과 함께 단맛도 느껴진다."

"이것을 이리 얹어 놓은 것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장성대군은 다시 숟가락을 들어, 이번에는 남만시 개찹이 묻어있는 계란이불의 한 면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계란이불이 찢어지며 속에 쌓여있던 볶음밥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이것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밥이로구나..."

"노란 이불 밑에 감춰진 붉은 밥이라니... 재미있군!"


그때였다. 마침 옆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다가 장성대군의 모습을 본 진아가 평상으로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나으리! 나으리! 계란이불밥은, 계란이불과 밥, 그리고 위의 장을 함께 떠서 드시는 게 제일 맛있습니다."


"오오! 그러냐? 고맙구나! 알겠다."


장성대군은 진아의 말대로, 남만시 개찹이 묻은 계란이불과 볶음밥을 함께 떠서 천천히 입 안으로 가져가보았다.


- 오물오물오물오물오물 -


".........."

"마... 맛있도다! 참으로 맛있도다!"


"그렇습니까?"


"그래! 정말 맛이 좋구나!"


"내 조금 더 먹어보아야겠다."


장성대군은 숟가락을 들어 이번에는 계란이불과 볶음밥을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으... 으음..."

"새콤함을 머금은 밥알 사이로 느껴지는 양파와 당근의 단맛! 거기에 돼지고기와 계란이 가진 고소함이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구나!"

"첫술에 느껴지는 빨간 장의 자극적인 맛은 강렬하게 식욕을 돋우며, 특히 이 계란이불과 어우러져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폭신폭신한 계란이불, 탱글거리는 밥알... 거기에 사각거리는 채소와 쫄깃한 고기의 다양한 식감은 이 밥을 더욱 맛있게 느끼도록 해주고 있다."

"이건 이미 <밥>이 아닌 그 자체로 완벽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도다!" 


"그... 그 정도로 맛이 좋습니까?"


계란이불밥을 맛본 장성대군의 극찬을 들으며 계속해서 침을 삼키던 구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진아를 불러 하나를 더 주문했다.


"얘... 얘야! 여기 계란이불밥을 하나 더 가져다주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나으리!"


그런 구길의 모습에, 평소라면 미련하게 많이 먹는다고 꾸짖었을 장성대군이었지만, 이번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래! 이건 너도 꼭 맛보도록 해라! 이렇게 맛있는 걸 나 혼자 먹을 수는 없지!"


"예, 나으리!"


"하하... 이건 필시 선미도 좋아할 것 같구나! 내 조만간 그 아이를 데리고 한번 더 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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