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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Sep 30. 2023

저 하늘에 떠다니는 '연'을 뭐라고 하죠?

중국에 도착하고 한동안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늘 살던 동네, 늘 타던 지하철, 늘 먹던 음식, 늘 만나던 친구들에만 익숙했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비행기를 타고 고작 2시간을 날아가니 거기 더 넓은 세상이 있었다. 거기가 중국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는 낯선 곳이었기에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더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주위의 보는 것, 듣는 것 모두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호기심이 만발하던 시절이었다. 


“중국은 국경일이 며칠이나 돼?” 

“중국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은 뭐야?” 

“중국에는 교복이 없어? 애들이 왜 체육복만 입고 다녀?” 

“중국 아기들 옷은 왜 엉덩이 부분이 열려?”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놀러 가는 동네는 어디야?” 

“중국 대학 기숙사는 몇 명이 한 방을 써?” 

“중국 사람들은 전부 공산당 당원이야?” 

“베이징덕 요리는 어느 식당이 제일 맛있어? 그거 먹을 때 오리 대가리는 왜 나와?” 

“중국에서는 왜 7시 30분부터 수업을 시작하는 거야?” 

“중국 국경절에 천안문 광장에 올라가는 국기는 크기가 얼마나 돼?” 

“중국 사람들은 어떤 연예인을 제일 좋아해?” 

“중국 CCTV는 왜 채널이 그렇게 많아?” 

“중국 사람들은 왜 여름에도 찬물을 잘 안 마셔?” 

“중국 사람들도 장국영 오빠 좋아해?”   


중국에 살지 않았더라면 한 개도 궁금하지 않았을 사소한 것들이 언제나 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나는 과외 선생님에게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수업을 받았다. 그 과외 선생님은 우리 학교 대학원의 감독과 학생이었는데 내 엉뚱한 질문이 줄줄이 사탕으로 이어질 때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인내심을 발휘해 친절한 대답을 들려 줬다. ‘뭔 개소리야?’라며 흘려들을 만한 질문도 허투루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약속한 시간이 아닌 엉뚱한 시간에 온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수많은 질문에 답을 해 줄 선생님은 그 사람뿐이었다. 호기심이 폭발하던 1학기에 그를 선생님으로 만난 건 정말 나의 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양의 질문 폭탄을 퍼붓고도 내가 한참이나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그 문제는 바로, ‘중국어로 연을 뭐라고 부를까?’하는 것이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그 ‘연’ 말이다. 


베이징에는 학교나 집 근처에 공원이 많은 편인데 그곳에 가면 항상 ‘광장무(廣場舞)’라 불리는 단체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과 연을 날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연도 우리가 흔히 보는 방패연이 아니라 새나 나비, 물고기, 용 등의 화려한 모양에, 몇 개씩 길게 이어진 큰 연들이 하늘 높이 떠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뭐, 어쩌면 내 시선만 사로잡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연들을 볼 때면 도대체 중국어로 연을 뭐라고 하는지가 그렇게 궁금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가져 간 내 작고 볼품없는 한중 사전에는 ‘연’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요즘 같았으면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챗봇에게 물어보면 1초도 안 돼 답을 얻었겠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하다못해 연을 날리는 사람에게 “아저씨, 지금 날리시는 거 중국어로 뭐라고 해요?”라고 물어봤으면 됐겠지만 당시 내게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그렇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날들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과외 선생님과 외출할 일이 있었고, 마침 학교 근처 공원을 지나게 됐다. 드디어 저 하늘의 ‘연’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온 것이다. 


“선생님, 저 하늘에 있는 연을 중국어로 뭐라고 해?” 

“응? 뭐 말이야?” 

“저거! 하늘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거!” 

“하늘에? 하늘에 뭐?” 

“저거, 저거! 날아다니는 저거!” 


과외 선생님은 하늘 위를 수놓은 연들을 보면서도 좀처럼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설마 ‘연’을 모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손가락으로 연신 하늘을 찌르며 쇼를 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은 끝에 결국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아, 저거? 저건 펑정(風箏)이잖아.” 

“펑정?” 

“그래, 하늘에 나는 저걸 펑정이라고 해.” 

“아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 주는 그의 대답을 들은 순간, 나는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큰 쾌감을 느꼈다. 교과서 속 뻔하디 뻔한 문제가 아닌 일상 속 나만의 호기심이 완벽히 충족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은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시절, 새로운 단어 혹은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 간다는 기쁨은 배움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탄탄한 디딤대가 되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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