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기간에도 일주일에 두 편은 글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마감이 닥쳐오고 뜻밖의 사건이 있어 몇 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무튼 1월에는 아버지 생신이 있어 첫 주에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하루 전인 금요일에
병원에 가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아버지였는데
그날따라 하루 종일 누워 잠만 자시고 식사도 안하시겠다고
했다. 본인이 하시는 사무실에 꼬박꼬박 나가는 양반이
온 종일 그러고 계시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병원에
가자고 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요지부동이셨다.
근데 조카를 데리고 잠시 외출했다 죽을 사오니 그새 업무
약속이 있다며 외출하신 뒤였다. 어디가 아픈 게 분명한데
그 몸으로 외출이라니 우리 아버지 고집도 참...
그로부터 3시간 뒤쯤 아버지가 돌아오셨는데 나이가 드시고
가뜩이나 걸음걸이가 뒤뚱거리게 되신 양반이 온몸을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먹었으니 당이
떨어져 그럴 만도 했지만 뭔가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여
저녁까지 하는 동네 내과라도 가보자고 우겼다. 예전에도
오빠가 늦은 저녁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맹장염이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이번에도 같은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몇 가지를 물어
보더니 맹장염인 것 같다고 하셨다. 이게 무슨 데자뷔인가?
2년 전 오빠도 그랬는데 또 맹장염이라고? '이 선생님은
환자만 오면 맹장염이라고 하나?' 속으로 이런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소견서까지 써주는데 큰 병원에 안 가볼
수도 없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했는데 피를 3번이나
뽑고 엑스레이에 CT까지 찍더니 정말 맹장염이란 판정이
나왔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동네 병원에 갔다 응급실행에
다시 맹장염 판정이라니 내가 무슨 맹장염 셔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튼 자리가 없다며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할 뻔했던 아버지는 갑자기 수술
하나가 취소된 덕에 그 병원에서 그대로 수술을 받게 됐다.
맹장염이란 게 흔해빠진 수술이라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70대 중반의 노인에게는 수술이란 것 자체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
가셨다.
들어 가기 전 선생님 말로는 수술 한 시간에, 회복 두 시간
이면 될 거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이 없었다. 조바심이 날 때쯤 선생님이
피곤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안에서 맹장이 터져
염증이 심하고 분변까지 있는 상태라 맹장을 떼내고 안을
깨끗이 씻느라 수술이 길어졌다고 하셨다. 맙소사, 맹장이
터졌으면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 아버지는 아프지 않다고
그렇게 우기시다니... 고집을 부려서라도 이른 시간에
병원에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어려운
수술이 됐는데 큰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노인이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나면 폐기능이 약화된다고 8시간 이상은 자지 말고
숨쉬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아버지가
회복실에서 나온 시간이 새벽 3시 반경이었는데 오전
11시까지는 어떻게든 잠을 재우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수술 전 도착한 큰오빠와 함께 아버지를 깨우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보통 마취가 깨면 아프다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아프지 않다며 눈이 굼실굼실 금방이라도 잠이
드실 것 같았다. 행여 폐렴이나 후유증이 올 수 있다고
선생님이 엄포를 놓은 터라 나나 오빠 역시 졸음이
쏟아졌지만 연신 아버지를 깨우며 숨 좀 크게 쉬시라고
수십, 수백 번 이야기를 반복했다. 쏟아지는 잠과 사투를
벌이며 고집 센 아이가 된 것 같은 아버지를 돌보고 있노라니
예전에 번역한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타이완의 유명 작가
장만주엔이 쓴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란 책에
'중년이란 부모님을 보호자로 두고 있던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란 내용이 있었는데 그 말이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체험적 진실로 확실히 느껴졌다.
나이는 중년이지만 비혼인 나는 삶의 경험이 그만큼
부족하고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 자체를 실감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수술로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 것이다. 그 기분은 뭐랄까
더럭 겁이 나기도 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현실적
걱정이 들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고통에 무디어진 아버지와 세월에 무디어진 딸은 서로의
짐을 바꿔 메며 함께 걸어가야 할 갈림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아버지의 맹장이 무겁게 느껴지던 날, 몸도 마음도
준비가 필요함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