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찾은 첫 직업은 한 잡지사 영문판 기자였다. 당시는 한참 미술계에 거품이 가득해 놀랍도록 붐이 일던 시기였다. 이후 몇 년 사이에 그 거품은 다 빠지고 본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 흐름을 타고 IT분야의 회사가 문화예술 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급하게 만든 잡지사였다. 체계가 안 잡힌 상태에서 그 기대감과 포부만은 컸던지라 그리 조직과 업무가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도 역시 처음에 지원했던 당시 예상했던 업무 영역과는 그 강약에 있어 다소 다르기도 했다. 주로 잡지 전체의 한글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도맡아 해야 했다. 취재를 다니며 여러 사람들도 좀 만나고 문화예술계 돌아가는 상황을 가까이서 보며 기사도 쓰고 하는 일들을 더 많이 기대했지만, 번역 또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통역일을 맡아야 한다든가 대중없이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거의 번역을 하느라 초주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나오는 결과물이 '내꺼'가 아니라는 게 속상하기도 했다. 1년 반을 그 생활을 하며 더 이상 직장생활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의 일"을 하고 싶었다. 미국 유학을 가기 전 한국에서 3년간 일을 할 때도 대학 강의를 나가고 독립기획자로 기획일만을 했었다. 잡지사를 다니며 즐거웠던 글쓰기와 번역이 '피곤한 번역 업무'가 되어 깊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며 지쳐가면서 퇴사를 고민하던 중, 끝나면 바로 이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재밌어야 하며, 나의 적성에 잘 맞아야 했다. 여러 대학에서 다시 강사와 겸임교수 등의 타이틀을 달고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강의와 함께 시작한 일이 출판 번역이었다. 사실 출판 번역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서너 달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책 번역이 해보고는 싶었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방법을 몰랐다. 맨 땅에 헤딩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시간 날 때마다 서점에 가서 번역 출판할 만한 문화예술인문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의 책들을 읽고 자세히 출판기획서를 썼다. 그리고 출판사들을 정말 샅샅이 뒤졌다. 이메일 주소를 얻을 수 있고, 문화예술인문 분야와 관련된 출판사에는 정말 거의 이메일을 보냈던 것 같다. 나름 각 출판사들이 주로 출판하는 책들에 대해 분석하고 정리해서, 개별 출판사에 맞춤 이메일을 보내는 수고를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투자했었다. 한 서른 군데는 보낸 것 같다. 그래도 한두 군데는 연락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어느 출판사에서도 답메일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며 잊어가고 있었다. 벌써 20년 전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잡지사 퇴사를 할 즈음, 그 사방으로 뿌려댔던 나의 노력이 작게나마 수확이 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렇게 출판 번역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잡지사를 그만두고 3년 동안 세 군데의 출판사를 통해 역자 자리에 내 이름이 적힌 네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함께 하던 강의 업무와 기획 업무가 많이 몰리면서 출판사의 제안을 거절하기 시작하면서 번역일과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 대신 평론일과 내 책과 여러 기고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 결혼과 두 번의 출산 등등 10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사이 한 번은 남편과 공동명의로, 또 한 번은 내 이름으로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 긴 시간이 지날 동안 공부도 좀 더 했고, 대학교 강단에서 강의는 계속했던 것 같다. 한 학기도 쉰 적이 없었다. 신기하게 두 아이도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 맞춰 출산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 계획하려 해도 쉽지 않겠다 싶을 만큼 타이밍이 나에게 쉬지 말고 일하라고 일터로 매번 내밀었다. 그렇다고 한 학교에서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다. 그건 내가 싫었다. 어떤 학기에는 한꺼번에 6군데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다. 미술, 미술사, 미학, 건축사, 디자인 등 여러 영역에 걸쳐있던 나의 캐리어로 인해 매 학기 나가는 여러 학교의 강의 교과목도 다양했다.
그리고 2020년이 되던 해,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두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네 식구가 해외에 나가서 한 달 살기를 할 계획으로 1월 초에 여권 갱신을 위해 사진을 찍고 여행 계획을 한참 세울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당장 며칠 뒤 코로나19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 생애 처음 경험하는 감염병으로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리라는 현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모든 강의와 회의 등 업무들을 비대면이 익숙한 한참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이때 즈음부터 여러모로 불안한 마음에 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들, 만약에 또 이렇게 불가피한 비대면의 시간이 많아질 때에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들의 하나가 다시 출판 번역일이었다. 그 사이 10여 년의 출판 번역가로서의 업무의 공백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또다시 한번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한 에이전시에게 연락을 하고, 그 에이전시를 통해 1년 5개월 만에 첫 번역서를 맡았고 지금까지 9권의 책을 계약했다. 아직 편집자의 손에 있는 책들이 여러 권 있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은 돼야 세상 빛을 볼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내년 즈음에는 번역서가 총 13권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번역한 것으로 계산해 보면. 이렇게 조금 더 본격적으로 번역가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번역가 경력 18년이라지만, 실제 번역가 생활을 한 것은 6~7년쯤 되는 것 같다. 여전히 강의와 기획 등 여러 일들을 함께 하고 있지만, 일주일 중 이틀은 꼬박 책상에 앉아 번역업무를 본다. 이 브런치북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다시 번역가의 일을 시작하면서, 번역에 대해 그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그저 지나가 금세 잊히는 생각으로 흘려보내기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한글이 아닌 다른 언어로 쓰인 한 권의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글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이 쓰이기까지의 수많은 배경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층을 이루며 쌓여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책을 맡으면, 그 관련 주제에 대한 사전 리서치에 많은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리고 난 번역일 전체 과정 중 그 과정이 특히 좋다. 매번 책을 사서 읽는 것만큼이나 그저 옆에 쌓아두고 그것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새로운 책 번역을 시작할 때마다 그것들을 알아가기 위해 쌓아두는 수많은 앎이 난 좋다. 하지만 그 앎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흩어지고 흘러가는 것이 아쉬울 때가 많다. 번역을 하는 과정 또는 결과에 대한 그 여러 이야기를 이곳을 통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출판 번역가의 글쓰기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