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안 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

꿈 이야기 02

by 산책가

눈부신 목련이 가득 핀 창가

엄마는 웃으며 나에게 당신이 사는 집을 구경시켜 준다며 나를 이끌었다. 어느새 나는 크고 하얀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방은 마치 한옥의 일부처럼 보였다. 벽면은 한지로 마감이 되어 있고 바닥도 흰색으로 온통 사방이 다 하얀색으로 가득했다. 너무 희어서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이 잘 구분이 안되기도 했다.

내가 서있는 곳의 전면에는 큰 창문이 있었다. 짙은 갈색 창틀의 미닫이 창이었다. 창은 한쪽으로 열려있었다. 하지만 열린 창 너머의 바깥 풍경이 방 끝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얀 벽과 마찬가지로 눈부신 흰색으로만 보였다. 창이 어디 있는지 구분하도록 도와주는 창틀의 색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흰색이었다. 나는 창가 가까이로 걸어갔다. 창가로 다가가 바깥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창 바로 위에는 눈부시게 활짝 핀 하얀 목련이 왕창 쏟아져 내리듯 가득 매달려 있었다.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 어린 시절 살았던 우리 집 중의 한 군데에는 목련과 라일락이 마당에 가득했었다. 크지 않은 마당이었지만, 봄이 되면 흰색의 목련과 분홍색의 라일락이 마당 위를 가득 채워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하늘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그 목련과 같았다.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이렇게 목련이 손에 닿을 듯 한가득 보이는 집이라니, 너무 좋았다.


이탈리안 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

하지만 그 아름다운 목련보다도 목련 사이를 뚫고 창 너머로 펼쳐진 전경을 본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태어나 처음 보는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거의 3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가늘고 긴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그 늘어선 나무들 앞에는 가는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너무 높이 솟은 나무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미만 해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 같았다. '보이는 것 같았다'라는 의미는 처음에는 나무의 높이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잠시 지나치듯 보였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 이후로 나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금세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형광빛이 섞인 듯한 찐 분홍색과 노란색의 잎이 한가득 매달려 있었다.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가벼운 깃털과 같았다. 아주 가볍고 눈부신 분홍과 노란 나무들이 산들산들 흔들리고 있었다. 앞의 시내에는 파란 물 위로 반사된 반짝이는 햇빛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가장 평화롭고 가장 눈부셨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침내 다시 만난 엄마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쯤 되었을 때 꿈에서 이렇게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나에게 엄마가 어디서 사는지 보여줬다. 너무 생생해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어딘가 실제로 있는 곳일 거라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꿈을 꾸고 난 뒤, 나무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꿈속의 나무의 생김새가 이탈라안 사이프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똑같진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꿈에서 본 전체가 진분홍색과 노란색인 그 나무의 경우는 그냥 꿈이라는 것도 알았다. 여행을 하다가 긴 가로수가 있는 길을 갈 때면, 또는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때면 항상 엄마를 생각하게 된다. 엄마를 생각하게 되는 또 하나의 순간들이 생긴 것이다.

친정 엄마는 아빠와 함께 맞벌이인 우리의 두 아이들을 거의 7년간 키워주셨다. 1년 뒤면 첫째가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였고, 우리는 아이들이 크면서 데리고 오가는 게 힘들어 아빠 엄마네 위층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사 가는 바로 전날, 그날 엄마는 갑자기 쓰러지셨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 계신 뒤 결국 돌아가셨다. 이제 갓 일흔을 넘기셨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도 엄마가 보고 싶은데 한참을 꿈에 안 나오더니 어느 날 가슴 벅찬 모습으로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를 보내고 난 슬픔에서 아주 아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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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