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펴질
미숙한 어둠이 시작될 즈음,
내 책상 위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빈 종이들만 가득하다
'다음 이야기는 뭐라고 쓸 거야?'
무안하게 나를 보고 있는데
난 지금 딱히 해 줄 말이 없네
시늉이라도 해 보려고 몇 자 끄적이다
이건 별로야 라며 구겨버려 던지면
그마저도 바닥에 어쭙잖게 있는 게
꼭 지금 내 인생 같구나
어둠의 농도가 짙어질 즈음
내 책상 위엔 뭘 썼는지 모를
구겨진 종이들만 가득하다
'다음 이야기는 뭐라고 써야 될까?'
깜빡이는 물음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어 난 또 우두커니
시늉이라도 해보려 자맥질하던 자국이
종이에 어설프게 휘갈겨질 때마다
가슴에 생채기가 어쭙잖게 나는 게
또 내 서투른 인생 같구나
구겨진, 구겨진, 구겨져 버린
종이조각 속에서도 꽃이 피나요
성한 흙이 아니더라도 새싹은 돋던데
잉크물을 주면 이야기꽃이 필까요
구겨진, 구겨진, 꼬옥 구겨 버린
삶이어도 아직 꽈악 쥐고 있어요
주름 진 이야기어도 괜찮겠죠
그럼에도 언젠간 난 활짝 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