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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나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을 엄마에게,
엄마, 우선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걱정은 내려놓으세요.
그 중에 하나도 일어난 건 없으니까요.
편지를 쓰는 지금, 클루브린에 온 지 이제 3일째 되는 날이에요. 전 지금, <작가의 마을>의 '커피와 담배'라는 카페에 와 있어요.엄마가 알려줬던 대로 오른쪽 모서리 쪽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지금은 오후 3시, 사람이 하루의 일을 어느 정도 끝마치고 나른해진 몸을 커피로 달랠 시간이죠. 그래서 그런지, 카페가 지금 매우 북적여요.왠지, 이곳에 지금 누군가와 있는 기분이지만 누가 누구인지 아직은 저는 모르겠어요. 자세히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훑어본다면 알 수도 있겠지만, 전 아빠처럼 저기 버건디 베스트를 입은 신사분 얼굴 좀 보게 잠깐 비켜주실 수 없나요?라고 말할 배짱은 없거든요.하지만, 왠지 이곳에 내가 아는 작가가 한 분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정말 설레어요. 이런 건 aika 마을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거니까요. 굉장한 작가들과 한마을 안에 있을지 모른다니 정말 묘하면서도 설레는 기분이 들어요.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 한 명쯤은 저를 지켜보고 있을까요?
엄마가 그러셨죠. 너도 작가라고, 하지만, 넌 늘 네가 작가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고. 맞아요, 전 늘 그랬어요. 생각해보면, 전 제가 작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이미 책을 2권이나 출간한 작가인데도, 남들 앞에서 제가 작가라고 소개하고 제가 공들여 쓴 책을 소개하는 것도 뭔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 한 번도 그 이유가 뭔지 제 자신에게 묻지 않았어요. 전 오히려 그 이유를 묻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곳에서 전 달아나고 싶었던 거예요.하지만, 지금이라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제가 저란 사람을 데리고 이곳에 온 지금이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그랬냐고, 왜 넌 너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냐고 하고요.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안 해도 되겠죠. 왠지 답은 시간이 걸릴 것 같거든요. 대신, 전 제 자신에게 약속할 거예요. 답은 이곳에서 나갈 때 꼭 가지고 나가겠다고요. 한 달 뒤에, 제가 찾는 답을, 이곳에 온 이유인 제가 찾는 답을 꼭 가지고 돌아가겠어요. 한 달 뒤면, 제가 더 성숙해져 있을 테니 그때 너무 놀라시지 마세요. 그럼 또 편지할게요.
사랑을 담아,
당신의 하나뿐인 딸, 조
P.S 아빠를 꼭 만날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실례합니다, Miss.""네?" 조는 자신에 내리쬐는 햇살을 가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웨이브 머리에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자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편지 쓰는 걸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어요.""아니요, 이미 다 썼는걸요. 봐요, 추신까지 썼잖아요." 조는 편지를 반으로 접으며, 앉아도 된다는 손짓을 했다."고마워요.""예술가들의 동네도 카페가 만석인 건 똑같네요.""오히려, 예술가들의 동네니까 더욱 그럴 수도 있어요. 예술가들은 늘 뭔가에 취할 게 필요하니까. 아, 그나저나 제 소개를 안 했군요.전 가브리엘이라고 해요. 당신은?""아, 전 조라고 해요.""반가워요. 여행객인가요?""네, 맞아요. 티가 났나요?" 조는 자신이 입은 옷을 둘러보며 물었다. 혹시 히피스럽나? 공항에서 히피 스타일의 여자가 운영하는 옷 가게에서 사긴 했는데. "하하, 아뇨. 그냥, 처음 본 얼굴이라 물어봤어요. 여행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니까요.""맞아요. 여긴 전 세계에 예술가들이 찾는 곳이잖아요. 정말 근사해요. 지금도 제가 여기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조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온 게 처음인가요?" "네, 처음이에요. 사실 오래전부터 오고 싶긴 했는데.. 계속 미루다 지금에서야 오고 말았죠. 지금도 실은 계획에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오게 된 거예요. 참.. 인생이란 웃기죠.""네, 맞아요. 인생이란 웃기죠." 조는 커피를 마시며 그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차분한 분위기에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이 <작가의 마을>의 그림과 하나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분명히 사람도 이곳에 있는 걸 보면 작가인 게 틀림없다. '그리스인 조르바'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건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이건 아냐고 물으면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숨겨진 이야기까지 알려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어..?" 왼쪽 팔에 저 문신은.."왜 그러죠, 조?""당신 왼쪽 팔에 문신..""아... 이거요. 별거 아니에요" 가브리엘은 셔츠를 내려 문신을 가렸다. 왠지 당황하는 눈치였다. 분명, 저 문신은 아빠의 손목에도 있던 문신이었다. 펜촉의 모양. 조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왜 가브리엘도 같은 문신을 하고 있는 걸까? 이곳과 연관이 있는 걸까?"그나저나, 당신은 왜 이곳에 왔나요?""아, 글을 쓰려고요. 쓰고 싶은 글이 있거든요.""아, 당신은 작가이군요! 뭔가 글을 쓰는 포즈가 예사롭지 않다 생각하긴 했어요.""하하, 말도 안 돼요. (어머, 정말?) 당신은요? 당신도 작가라고 생각하긴 했거든요.""뭐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죠?""그냥, 뭔가 이곳과 당신이 한 폭의 그림 같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뭔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지적인 느낌이오.""고마워요, 나는... 그냥 대학교수에요. 뉴욕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학생들에 문학을 읽어주는 교수라.. 역시 그와 매우 잘 어울린다."아, 뉴욕..""뉴욕에 가본 적 있어요? 아니요. 전 이곳이 aika 마을을 떠나서 온 첫 번째 곳이에요.""aika 마을이오?""네, aika 마을을 아세요?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전 제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는데,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아요.아, 지금은 그곳은 겨울인데 눈이 내린 마을은 정말 예뻐요.""물론 알죠. 이곳에 aika 마을에서 오신 분이 계시거든요.""aika 마을에서요?" 조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빠다. 그 사람은 분명히 아빠다."혹시 그분을 잘 아세요?""그럼요.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분을 알죠. 그분은 이곳의 캡틴이거든요.""캡틴? <글의 마을>의 캡틴이라고요?""네, 윌리엄 라이터. 그분이 이곳의 캡틴이에요. 혹시 그분을 아시나요?" 조는 머리를 짚고 천천히 그가 한 말을 생각해봤다. 즉, 가브리엘의 말에 따르면 우리 아빠는 클루 브린의 <글의 마을>에서 캡틴이 되고자 십 년 동안 가족을 등졌다 이 말인가? 조는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 캡틴 로버트는이를 알면서 십 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이 사실을 숨겼다 이 말인가? 맞아, 그랬을 것이다. 그도 같은 캡틴이지 않은가. 이게 다 어릴 적 남자애들이 하는 소꿉장난 때문이다. 남자애들은 골목에서 어릴 적부터 캡틴이 되고자 칼싸움을 하지 않나. 이게 다 그 소꿉장난이 남자애들을 망쳐놓은 것이다. "알다마다요. 제가 그분의 딸인걸요.""그분의 딸이라고요? 그럼 당신이 조 라이터인가요?""네, 맞아요. 아빠에게 제 얘길 들으셨나요?" "듣다마다요. 윌리엄은 당신을 자랑스러워했어요. 당신이 낸 책도 읽으셨는걸요.""아빠 가요? 제가 낸 책을요?" 십 년 동안 말 한마디 안 했으면서, 내가 낸 책은 읽었단 말인가. 조는 머릿속에서 뭔가가 엉키는 기분이 들었다.이 엉킨 것을 풀려면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일단, 그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 어떻게 된 사정인지 전부 들어야 한다. "아빠를 만나야겠어요. 아빠를, 캡틴 윌리엄이 있는 곳으로 절 데려다주세요.""아, 그게......""왜요? 아빠를 만나는 데 무슨 문제 있나요? 난 그의 딸이에요. 딸이 아빠를 만나는 데 무슨 문제 있나요?""먼저,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어요.""그게 뭐죠?""지금 그는 <글의 마을>에 있지 않아요. 그는 정확하게는 다른 곳에 있어요.""그게 어딘데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워드월드 (WORDWORLD). 그는 지금 워드월드에 있어요." 워드월드라.. 조는 이 이름을 이미 들어본 적 있다. 엄마가 그날 밤, 조에게 말해줬던 곳이다. 아무나 갈 수 없다는 곳,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곳이다. 캡틴 로버트는 내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캡틴 로버트""응?""혹시.. 워드월드(WORDWORLD)란 곳 아세요?""네가 어떻게 그곳을 아니?" 캡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뭔가 알고 있는 것이다.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다."엄마가 말해주셨어요. 삼십 년 전, 그곳에 갔을 때 소문으로 들었다고요. 클루브린이란 땅의 제일 위쪽에 있는 곳.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지않는 곳, 숨겨져 있는 곳이라고요. 캡틴은 이곳에 대해서 뭔가를 아세요?""나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어. 네가 말한 대로 그곳은 숨겨진 곳이거든. 즉,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선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워드 월드의 문을 열려면 워드월드가 원하는 것을 내놔야 할 거야.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곳은 위험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어. 즉, 클루 브린이란 곳에서 그곳은 금지된 구역인 거지. 그래서 모두 그곳을 언급하는 것을 꺼린단다. 아무도 그곳에 가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그곳을 가려 했던 젊은 청년들은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어." "하지만.. 하지만 가야 한다면요?" 조는 그래도 물러설 맘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그곳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가야 한다면.. 부디.. 조심하거라."
"그 곳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으로 아는데요. 아빠는 어떻게 가신거죠? 아빠가 워드월드에 선택을 받은건가요?"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캡틴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후에 그가 워드월드로 떠났다는 말만 돌았어요.
저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해요." 가야 한다. 캡틴은 그 곳이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어쩌면 아빠는 그곳에 갇힌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만일을 대비해 내가 그를 구원하러 올 수 있도록 이 티켓을 캡틴 로버트에게 남긴 것이다.
"전 가야 해요. 워드월드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줘요. 당신은 가는 법을 알고 있죠?" 가브리엘은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다 조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윌리엄의 딸이라고 했죠? 혹시 특별석을 타고 왔나요?"
"네, 맞아요. 아빠가 아빠의 친구분께 이 티켓을 제게 주도록 부탁하셨다고 했어요."
"티켓을 당신에게 남겼다구요? 혹시 그 티켓을 제가 볼 수 있을까요?" 티켓을 받아든 가브리엘은 천천히 살펴보더니 '역시..'라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 티켓에 뭐가 있나요?"
"저도 예전에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그냥 미신 같은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진짜였군요.
이건 그냥 티켓이 아니에요. 여기에 적혀있듯 '스페셜 티켓'이에요."
"스페셜 티켓? 스페셜 티켓에 대한 미신이 있단 말인가요?"
"잘 들어요, 조. 워드월드는 말 그대로 아무나 갈 수 없어요. 소문대로라면, 워드월드에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그 문에 워드월드가 원하는 걸 내놓아야 들여보내준다고 해요."
"그게 뭔데요?" 제발 돈만 아니길. 클루브린에 와서까지 오염된 뉴스에서만 듣던 걸 듣고 싶지 않아.
"패스요"
"패스? 패스를 어디 가서 사야된다는 말인가요? 따로 파는 데가 있어요?"
"아니요. 누구나 가서 살 수 있다면 그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버리잖아요. 그건 아무나 살 수 있는 것 같은 게 아니에요."
가브리엘은 씨익 웃으며 티켓을 반으로 찢었고, 조는 한숨이 나왔다. 기념으로 갖고 있으려고 했는데 저걸 맘대로 찢어버리다니.
댕그랑
"응?" 티켓 안에서 떨어진 금빛 카드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뭐지? 보물찾기게임 같은건가?
"하하, 봐요, 조" 가브리엘은 보물을 찾은 소년처럼 카드를 들고 웃고 있다. 그나저나 왠 카드지?
"조, 자 받아요. 그리고 절대 잊어버리면 안돼요. 이게 바로 워드월드의 패스에요"
"이게 워드월드의 패스?" 조는 금빛카드를 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패스? 멋진 말이라도 써 있을 줄 알았는데, 금색으로 칠해져만 있을 뿐 아무 말도, 하다못해 워드월드(WORDWORLD)라는 말도 써 있지 않았다. 요즘 카드는 얼마나 멋있게 만드는데. 별 거 아니네. 순간 <찰리의 초콜릿 공장> 같아서 좋아했는데. 워드월드에 가면 카드 만드는 사람에게 좀 일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조는 지갑에 집어 넣으려 했다.
"아뇨!" 가브리엘은 손을 뻗어 조의 손을 막았다. 오, 방금 CF 같았어요, 가브리엘!
"그게 다가 아니에요"
"다 봤는데요. 아무것도 써 있지 않았어요"
"뒤집어봐요" 조는 가브리엘의 말을 카드를 뒤집었다. 카드 뒷면에 다섯개의 퍼즐칸이 조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 안을 채울 퍼즐이 없을 뿐.
"나한테 퍼즐을 맞추라는 얘긴가봐요? 퍼즐이 없네요."
"아마도 워드월드는 당신이 그 퍼즐을 찾아서 가지고 오길 바라나봐요. 5개의 퍼즐을요. 다 맞추면 무슨 그림이 나올지 몰라도."
조는 퍼즐칸을 바라보았다. 이 카드를 티켓에 숨겨넣은 사람은 대체 나에게 무엇을 바란걸까? 내가 숨겨진 게임을 찾았다고 흥미진진해할거라 생각한건가? 조는 정말 한숨이 나왔다. <올해의 Sisu> 제출기한까진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시간을 아껴아꺼 써야 할 시간에 퍼즐맞추기나 하게
생겼다. 조는 정말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다. 아빠는 이 티켓을 받아들 때, 알고 있었나? 아니면.. 설마 아빠가 넣은건가? 다 큰 딸이랑
오랫만에 퍼즐게임하자고?
"무슨 생각해요, 조?"
"글쎄요,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난 한 가지는 알 것 같네요." 가브리엘이 조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게 뭔데요?"
"당신은 끝없는 여행을 하게 될 것 같네요.
그게 뭔지 깨달을 때까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