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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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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같은 하루가 밤이 되고, 조의 한숨이 뿌연 구름이 되어 밤하늘에 올랐다.


"무슨 생각 해요, 조?" 가브리엘이 나란히 걸으며 묻는다.

"그야..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죠" 당연한 얘기 아니겠어요, 가브리엘. 알면서 묻긴.

"WORDWORLD? 아빠를 찾는 것 때문에 그래요?"

"사실.. 십 년 동안 아빠를 보지 못했거든요. 아빠는 십 년 전, 제 생일 다음날에 사라졌어요."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순간, 무거운 마음이 가브리엘을 짓누른다.

"우리 가족은 중요한 날은 늘 셋이서 함께 보냈어요. 제 생일이나 학교, 입학식, 졸업식 날이 되면 늘 가는 피자집이 있는데 꼭 거기서 같이 피자를 먹으며 축하를 하곤 했어요. 생각해보면, 별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아도 그때가 정말 기뻤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다음날 아빠는 사라졌어요. 아무런 내색 없이 제 생일만은 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죠. 다음날 보니, 거실의 협탁에 쪽지 한 장만 놓여 있었어요." 가브리엘은 가만히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다. 하긴, 이 상황에서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 '언젠가 우리의 길이 서로에게 닿으면, 만나게 될 거야.' 하고요.

그렇게 십 년 동안, 우린 만나지 못하게 되었죠. 아직, 아빠와 저의

길이 서로에게 닿지 못했나 봐요." 조는 어색해진 분위기에 신웃음을 지어 보였다. 원하진 않는다만,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그녀인걸

"아빠를.. 원망하나요?" 가브리엘이 어렵게 입을 뗐다.

"뭐라고요?"

"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아빠를 지금도 원망하나요?"

조는 가브리엘을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그는 아빠 나이 또래쯤은 돼 보이긴 한다. 머리도 군데군데 희끗희끗하고 이마와 눈가에 주름도 졌다. 조는 고개를 돌려 밤하늘에 뜬 달을 쳐다보며 아빠를 떠올려봤다. 그러나, 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가끔 달에 보고 싶은 사람 얼굴이 잘만 떠오르던데 역시 영화는 영화인 걸까. 조가 아빠를 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아빠를 본지 오래됐을 뿐이다.

그것도 십 년이나.


"솔직히 말한다면.. 그랬었죠. 네, 그랬어요. 원망했어요.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엄마는 저와 달라요. 엄마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나 봐요. 모험가인 아빠를 사랑했으니 결국 이런 날이

올 거란 걸 각오했던 건지 모르지만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전부를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는 그 말 그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어요. " 조는 입술을 한번 꾹 깨물고 말을 잇는다.

"아빠는 사라지기 전에도 집을 자주 비웠어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

중요한 날이 될 때쯤이면 잊지 않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아빠가 자주

집을 떠난다 해도 어딜 가든 아빠의 맘속엔 우리가 있구나. 우리 가족이 그의 중심이구나라는 생각에 미워하지 않아도 됐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가버린 이후로는..." 조는 말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조금은 잊었다고, 그녀의 기억 속에서 흐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다시 그날의 기분이 그녀의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다.

"조? 괜찮아요? 왜 그래요?"


'언젠가 우리의 길이 서로에게 닿으면, 만나게 될 거야.'


무책임했다. 아빠는 무책임했다. 그것이 사실이고 실제 일어난 일이다. 아빠와 나는 엄마를 뒤로하고 떠났다. 이곳에서 캡틴이 되기 위하여 우릴 버리고 떠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지.. 정말로 우리보다 이곳이 그에게 더 중요했던 걸까


"원망스러워요." 정말로.. 한 가족인 우리보다 더..


조는 지금껏 아빠에 대한 기억 때문에 뼈저리게 슬프다 해도,

눈물을 쏟진 않았다. 결국 울어버리면 자신이 아빠한테 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아빠에게 좀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가브리엘은 그런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우리 가족은 그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떠났으니까. 그래서 가슴에 묻고 살았는데, 정말 그러려고 했는데 그동안 아무 소식 없다가 지금 이렇게 나타나서는 나랑 퍼즐게임이나 하자는 건지. 정말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아빠는." 조는 가브리엘의 어깨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빠가 안아준다면 이런 기분인 걸까? 조는 예전에 아빠가 자신을 안아준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뿐만 아니라 아빠의 따뜻함도 기억 속 어디에도 없다. 조는 너무 슬퍼져서 더욱 펑펑 울다 척척해진 가브리엘의 어깨가 느껴져 얼굴을 뗐다.

누군가 본다면, 가브리엘의 한쪽 어깨에만 비가 내린 줄 알았을 것이다.


"미안해요, 가브리엘" 조는 머쓱해져 소매로 가브리엘의 어깨를 꾹꾹 눌렀다.

"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요. 슬픈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나요?"

"네, 덕분에요."

"그럼 다행이네요. 계속 걸을까요?" 조는 눈물을 마저 닦으며 싱긋 웃어 보였다.

"교수님은 이곳에 혼자 오셨나요?"

"네, 혼자 왔어요."

"뉴욕에서 가르친다고 했죠? 가족분들은 거기에서 지내고 있나요?"

"네, 부인과 슬하에 딸 하나가 있어요. 그쪽 나이쯤 되었어요."

가브리엘이 주머니에서 행커치프를 꺼내 조에게 건넨다.

어느 영화에선가, 남자가 행커치프를 늘 갖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여자가 울 때 건네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누가 그런 말을 가장 먼저 했는지 몰라도 전 세계의 남자들을 더 낭만적으로 만든 건 분명하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나요?"

"물론 보고 싶죠. 하지만, 저도 여기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글을 쓰시기 위해선가요?"

"아뇨, 당신과 같은 철학적인 이유라면 더 멋지겠지만, 교수들은

매해 논문을 쓰는데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끊임없이 학교에선 학교 이름을 빛낼만한 걸 찾길 요구하죠. 저도 꽤 피곤하게 살고 있답니다." 가브리엘이 싱긋 웃어 보였다.

"저는 말했듯이 글을 쓰려고 왔어요."

"알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글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aika 마을을 아신다고 했죠? 그럼 혹시 매해 겨울마다 열리는

대회 같은 걸 아시나요?"

"아니요, 제가 aika 마을에 대해 아는 건, 지금쯤 aika 마을은 눈으로 덮여 반짝인다는 것과 그 마을엔 글을 찾으러 세상을 누비는 용감한 한 여자가 있다는 것만 알아요." 조는 그 말에 왠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글쎄요, 전 그렇게 용감하지 않아요. 아무튼, aika 마을에도 캡틴이 있어요. 캡틴 로버트라고 우린 부르죠. 그분이 매해 겨울만 되면

<올해의 Sisu>라는 대회를 개최해요. 아, Sisu란 어느 추운 지방의 말인데, 이는 '힘들어도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을 뜻하는 말이래요. 그래서 매해, 이 정신과 관련한 주제로 대회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좀 난해해서 감이 안 오네요. 아직 시작도 못했어요."

"아주 흥미롭네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겠죠?"

"네, 그런 편이에요.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요. 디자이너, 가수, 화가 등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전부요. 큰 명예가 되거든요. 캡틴이 전국 신문 연합회 회장이라 새해 신문에도 작품을 발표할 수 있고 5년 동안 창작지원금도 받을 수 있어요. 당연히 우승상금도 주어지고요.

저도 5년간 연속으로 도전했어요. 아직 한 번도 우승은 못 했지만요."

"그래도 도전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예전엔 그러지 않았어요.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야 그동안 들인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 조는 가브리엘을 향해 미소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깨달았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힘겹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매 순간에 난 성장으로 보상받았다는 것을요.

그 후로, 전 제가 하는 모든 도전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정말로 자유로워진 거죠. 마음껏 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곳에 올 수 있던 거고요." 조는 정말로 한 마리의 새처럼 앞을 향해 뛰어갔다. 정말, 지금 날개만 있다면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찾은 것 같네요."

"뭐라고요?" 조는 날갯짓을 하던 두 팔을 멈추고 가브리엘을 돌아봤다.

"당신이 찾으려고 하는 거요. Masterpiece. 어쩌면, 지금 당신은 이미 쓰고 있지 않나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교수님. " 가브리엘은 조를 호텔 앞에 바래다주고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뒤돌아갔다. 왜 이렇게 요즘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생기는 걸까? 정말 내가 수수께끼 문제가 돼버린 걸까? 조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풀어야 하는데, 그래야 아빠도 찾고, Masterpiece도 찾고, 그래야 aika 마을에 돌아가서 엄마와 피에르도 보는데!


"조!" 조는 말없이 가브리엘을 뒤돌아봤다.

"아빠에게 분명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오랫동안 가족에 숨겨야 했다면, 그래서 떠나는 선택을 했다면, 분명 그럴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그니까 이젠 아빠를 너무 원망 마요." 가브리엘은 말을 끝마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은 그만 생각하고 푹 자요."

"고마워요, 가브리엘. 조심히 가세요." 조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저만치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정말로.

이젠 그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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