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것이었고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곳에서
흔히 살기 힘든 시절을 '겨울'에 비유하곤 한다. 꽃 한 송이 나지 못하는 얼어붙은 땅, 그 얼어붙은 땅 위에 눈은 겹겹이 쌓이고찬 바람마저 몰아친다면. 그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은 내게 가혹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면? 계절마다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다가오는 겨울엔 겨울을 닮은 영화가 떠오르는 법. 삶 자체가 겨울인 듯한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리'(케이시 에플렉 役)는 보스턴에서 아파트를 관리하는 잡역부로 생계를 이어간다. 근근이 홀로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에게 유일한 의지가 되어줬던 형 '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고향 맨체스터로 오게 된 '리'는 형이 유언에서 당신의 아들인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본인을 지정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홀로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삶에 형의 미성년 아들마저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움. 삶의 무거움을 두 배 이상으로 짊어져야 하는 '리'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에 나날이 발버둥 치며 고향 맨체스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한때 맨체스터에서의 삶은 행복했었다. 친애하는 형'조'와 지금은 반항적이지만 한땐 자신을 잘 따랐던 조카 '패트릭'과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곤 했고, 사랑하는 부인(미셸 윌리엄스役)과 두 딸과 행복한 일상을 누렸었다. 그땐 행복이 저만치 있지 않았다. 행복은 자신의 일상이었고 집안에 있었다. 하지만, 행복이 문밖으로 나가버린 밤, '리'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행복이 따라나온 자리에 불운이 대신한 밤, 화마가 그들을 덮치고 두 딸을 잃게 되며 그의 삶은 그날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는 목 끝까지 차오른 삶의 무게에 더는 자신이 버틸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I can't beat it"
이 한마디는 삶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날부터 참고 참아온 한마디였다.
'리'는 그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과 조카의 인생을 정리하며 그럼에도 다가올 날들의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삶은 많이 변했지만, 조카는 계속 그의 삶을 유지하게끔 맨체스터에서 살아가게 도와주고 고장 난 모터도 갈아 계속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게 해준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의 삶은 감히 그의 삶의 무게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한편으론 우리네 삶과 저만치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겨울날 찬바람을 맞아가며 혹독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이지만, 신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남겨진 삶 안에서 내일을 준비한다. 첫 장면에서 형과 조카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리'는 엔딩에서도 같은 바다에서 조카와 낚시를 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달아나고 싶었지만 돌아오게 된 곳,
내 모든 것이었고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곳에서.
결국 삶은 내게 차가운 바람이 부는 시린 겨울을 안겨줬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살아간다.
우리네 삶은 이 '그럼에도'의 끝없는 연장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