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부터 나는 체육을 유난히 싫어했다. “운동은 숨만 쉬면 된다”라는 농담을 하며 누워 지내기 일쑤였다. 달리기는 느렸고, 체육은 영 소질이 없었다. 몸을 쓰는 걸 잘하지 못했기에 더 싫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못하는 것을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다. 대표적인 것이 수학과 체육이었다. 두 과목 모두 끔찍하도록 싫었다.
어릴 때의 나는 잘하는 것이거나, 조금 부족해도 좋아하는 것만 했다. 그것만 하고 싶어했다. “좋아하는 게 있는데 왜 싫은 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면 언제나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잘하는 것은 잘했기에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니까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싫어하는 것은 애초에 내 선택지에 없었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잘 못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던 것이다.
싫어하는 것들을 피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에서는 늘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학교 수업이든, 사회생활이든, 결국 의무로 해야 하는 일들은 곳곳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내가 한 가지 잘했던 건 지구력이었다. 돌이켜보면 땡볕 아래 단체 기합을 받을 때도, 오래 달리기를 할 때도, 재수하면서 그토록 싫어했던 수학을 꾸역꾸역 다시 했던 것도 모두 지구력 덕분이었다.
싫어하는 것들,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기 싫어했던 마음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아주 천천히 바뀌었다. 세상은 내 호불호와 상관없이 사건을 던지고, 나는 그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싫다는 마음만 잔뜩 안고 살다 보면 결국 내 손해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운동을 스스로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몇 달 하다가 그만두고, 또 몇 달 하다 접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활 습관을 바꾼다’라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너무나 싫어했던 일이었기에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어차피 못하니까 잘할 필요 없다. 그냥 꾸준히 나가자.”
“내 목표는 건강이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고, 요가는 지금까지 내가 가장 오래, 가장 꾸준히 한 운동이 되었다.
나는 겨울도 무척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았지만 비가 오거나 겨울이 오면 쉽게 우울해졌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우울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이 고질적인 습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있다가 정신이 멀쩡하게 돌아오면 불건강해진 몸부터 돌보느라 더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습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몸이 아파서 다시 마음까지 무너지는 걸 겪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싫어했던 겨울은 지금도 좋아하진 않지만, 마음을 고쳐보려고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매일같이 바깥을 나갔다. 겨울의 온도를 견뎌보려고. 조금 덜 싫어져서, 나에게도 살 만한 계절로 만들어보려고.
그렇게 노력한 덕에 싫어하는 마음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잘하지 못하는 일들은 여전히 마주할 때마다 어느 정도 고통스럽지만, 예전보다는 그 고통에서 빠르게 헤쳐나올 수 있게 되었다. 자신 없는 일을 대할 때는 “하는 데 의의를 두자”라는 마음으로 임한다. 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했다. 그것만으로도 지난날의 나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쓴 약을 꾸역꾸역 삼키는 것처럼, 나는 나를 조금씩 깎아왔다. 그 덕에 일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한결 편해졌다. 못해도 괜찮다. 결과만이 나를 증명하는 건 아니니까. 오늘 했다면 내일도 할 수 있다. 하다 보면 ‘싫음’이 조금씩 무뎌지기도 한다. 그것은 수치로 보이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바꿔가는 일들일 것이다. 그러면 조금은 더 살기 편해지겠지.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