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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Feb 10. 2023

과하지 않은 적극성, 그리고 행운

계속 이렇게 살아보도록 하자

이번 주 화요일 오전에 확인한 이메일 내용을 멍 하니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즐겼다. 


"저희 팀이 지금 검토하는 딜들 몇개가 있는데, 혹시 정진님 하우스에서 Fund-of-fund 투자도 하시나 싶어서 한번 여쭤봅니다..."  




나는 본업 외에 CFA한국협회라는 (대부분)금융회사 사람들인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한 달에 한번 회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대부분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 연사를 섭외하지만 이번은 내가 듣고 싶었던 업에 대한 조언을 세미나 주제로 정하고 좀처럼 만나기 힘든 PE업계 선배인 지금 내가 활동하는 펀드와 비교도 안되게 큰 곳의 대표에게 콜드콜을 하였다. 지금 덤덤히 이 글을 적고 있지만 당시 투자한 기업의 큰 이슈 때문에 엄청 고생 중이었던 터라 나의 업에 대한 고민을 상세히 적어 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TMI 수준으로 했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외로 그 대표님은 흔쾌히 세미나에 응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미나는 잘 끝났고, 조(兆)단위 거래를 하는 PE(Private Equity)는 내부적으로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미 있는 곁눈질을 해볼 수 있었다. 업계가 좁아 알고 보니 한 다리 건너 연결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과한 접근은 나도 부담이라 내가 생각한 딱 여기까지 인연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분의 닮고 싶은 몇몇 면들을 복기하며 벤치마크 삼아 업에 집중해왔던 것 같다.

 

규모의 차이도 컸고, 본질적으로 그곳과 우리는 같은 업을 하는 곳이기에 이런 협업(?)제안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Fund of fund 방식의 투자는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마무리하기엔 아쉬움도 컸다.

  

'어떻게 하면 이 메시지/메일을 레버리지 삼아 협업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볼까' 


그 찰나에 이 생각이 머리 속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제안한 두 개의 프로젝트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을까? 역제안 방식의 답변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 때부터 우리 팀의 장점, 네트워크 등을 빈 종이에 써내려 갔다. 이런 고민을 이렇게 대놓고 자주 못해봤기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현재 우리의 상황을 소상히 설명하고, 제안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구조를 제안했다.  


답은? 





금요일인 지금 받지 못했다ㅎ


하지만 괜찮다. 이런 Flow 자체가 내게 큰 자극이 되었고, (내 수준에서) 과하지 않은 적극성이 가져다 준 행운이란 생각 때문이다. 운을 만들어 가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또 평소 장점이든 단점이든 나에 대한 파악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정확히 나에 대해, 우리 팀에 대한 단순 소개자료 말고 진짜, 진짜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약간의 마케팅 적인 요소가 가미된 임팩트 있는 문장 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몇 가지 내가 행운이라 생각했던 사건들을 복기해보니, 첫 시작은 '과하지 않은 적극성', '약간의 민망함과 귀찮음'을 뚫고 나왔던 찰나였다. 그 과정에서 얻는 소중한 인연과 인사이트는 덤이다. 계속 이렇게 살아보도록 하자.



*덧, 그림은 DALL-E에게 부탁해 그려본 반 고흐 스타일의 Financial Industry. 우린 놀라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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