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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Mar 19. 2023

노력과 결과사이의 균형

그리고 포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응원

'제 브랜드가 그저 그랬던 보세 옷으로 기억될까 걱정되네요' 


첫 번째 만남에서 J가 내게 한 말이다. 




J는 패션 대기업의 디자이너로 시작하여, 2011년부터 의류 브랜드를 론칭해서 운영해오고 있다. 자연의 빛에서 영감을 얻어 매 시즌 독특한 프린팅 디자인을 내놔 마니아층이 두터운 브랜드이다. 크고 작은 수상과 함께 서울 패션위크에서 파리 수주전시회까지 활동 폭을 넓혀갔다.  


하지만, 출산 후 본인이 거주하는 집 1층을 쇼룸으로 바꿔가며 육아와 일을 병행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패션 디자인을 사랑하고,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이 확실했지만 비즈니스는 달랐다. 특히 온라인은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졌다. 


한 패션매거진 편집장의 소개로 J와 캐주얼한 첫 미팅을 했다. J는 한눈에 봐도 체력적으로 번아웃이 온 듯 했고, 이 상태에서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것은 오히려 그나마 남아있던 체력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짓이라 생각했다. 쉼 없이 달려온 J의 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대기업 MD, 스몰 브랜드 M&A 프로들 등 J의 브랜드에 대한 업계 종사자의 의견을 받아와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해, 함께 일하는 펀드매니저를 통해 관련 컨설턴트를 소개받아 두 번째 미팅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회사라는 구조를 갖춰 나갈 때 즈음 초기 투자자를 연결해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이후는 컨설턴트를 통해 종종 소식을 듣는 정도였고, J의 기력이 회복되었는지 JTBC방송출연에서부터 그 이듬해 서울패션위크 참가소식까지 들려왔다. 작년 패션위크 초대는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업데이트 되는 디자인, 컨셉을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더 이상 내가 소개해준 컨설턴트와는 인연을 이어 나가지 않는 것으로 들었다. J와도 투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아마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J는 매년 잊지 않고 본인의 패션쇼 초대장을 보내주었고, 올 해 나는 처음으로 서울패션위크에 참석해 J의 결과물을 보았다. F/W의상이지만 봄 같은 청량한 음악과 은은한 향, J의 시그니처인 자연의 빛을 상상케 하는 프린팅까지 패션쇼장은 J의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클라이막스인 모델들의 단체워킹이 끝나고 J가 인사를 나왔다. 내 감정이 많이 이입된 판단이겠지만, 2년만에 본 J의 모습은 좀 더 단단했다. 무대를 나와 DDP를 걸으며 J와 인연의 시작에서 오늘까지의 일들을 생각해봤다. J는 투자도, 사업에 대한 컨설팅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시기의 응원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포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응원 말이다. 



그리고 결과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노력 자체에 빠져 끊임 없는 인풋만 해대는 경우, 루틴이 주는 편안함에 결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도 살면서 노력에만 빠져들려 할 때 2023년 서울 패션위크를 떠올려야겠다. J의 노력과 결과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말이다.


*그림은 DALL-E를 통해 만들어본 '노력'에 대한 이미지. 프롬프트에 따라 결과물이 상당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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