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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 Apr 30. 2023

신뢰를 위한 선택

휴일 아침에는 산책도 할 겸 집 앞 상가에 있는 커피숍을 주로 찾는다. 상가로 향하는 길에 나무들도 많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은 주변 커피숍보다 이른 오전 여덟 시부터 영업을 시작해 아침 손님들이 유달리 많은 편이다.


어제도 루틴같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사러갔는데, 원래 있던 젊은 사장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혼자 열심히 커피를 만드시는데 앞 손님들에게 음료를 내주며 어떤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요"


보통 주문 직후 결제를 받는지라 카드를 내밀었는데, 이분은 바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향하셨다. 머쓱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음료를 받았다.  


"제가 카드 리더기를 사용할 줄 몰라서요. 혹시 현금은 없으시죠?"


  "아 네..카드밖에 없네요"


"그럼 다음에 와서 결제해 주세요. 오늘은 그냥 드세요"


   "그러면 안되죠, 다른 사장님 계시지 않아요?"


"우리 아들인데 오전에 급한 일이 생겨서 조금 늦어서 먼저 제가 와서 가게문을 열었어요. 카드 손님들은 그냥 음료를 만들어 주라고 하네요 하하"


커피를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게 문을 좀 늦게 열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랬을 때 매주 나같이 이른 아침 커피를 사가는 손님들이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고. 궁여지책으로 카드 리더기 사용을 할 줄 모르시는 어머니를 매장으로 보낸 것 같았다.




이분은 당장의 손실을 감수 하고라도, 신뢰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나의 상황을 중심에 두고 내렸던 그간 수많은 결정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약간의 손실, 약간의 곤란함만 감수하면 상대방을 위할 수 있는, 티끌이라도 신뢰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기회들이 말이다.



오늘 아침 다시 그 커피숍을 찾아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젊은 사장님의 만류를 뒤로하고 밀린 결제를 했다. 내 업業의 중심에 누가 있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이 사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림은 DALL-E를 통해 만들어본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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